[견학] 청와대, 남영동 대공분실, 국회, 뉴지엄

2017.03.17 23:27

청와대 견학 (2월 14일)


토요일 오전 청와대 견학. 국정농단으로 인해 한창 시끄러운 시기에 방문했다. 오후2시 였는데 시위로 인한 혼잡이 예상된다고 오전으로 시간을 변경했다. 시간 변경을 요청하는 전화를 처음에 못 받았는데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와서 누군지 한참 고민했었다. 청와대라 그런지 전화조차 보안이 삼엄하다. 심지어 전화 문의조차 ARS로 녹음을 해놓으면 담당자가 나중에 답변을 해주는 시스템.


광화문 옆 주차장에 청와대 견학 방문자센터가 있다. 견학 당일 검정 선글라스에 이대팔 가르마를 멋지게 탄 경호원 십수명이 주변에 서성거렸다. 경호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옆을 지키며 견학을 도왔다. 견학하는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견학은 청와대 관련 홍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녹지원과 상춘재, 본관, 영빈관 순서로 쭉 도는 게 전부다. 녹지원은 어린이날 행사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정원이고, 상춘재는 외빈들을 접견하는 작은 목조건물이다. 본관은 예전 총독부 관사로 사용되던 건물을 경무대란 이름으로 계속 사용하다 93년도에 들어서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영빈관은 대규모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청와대 견학의 마지막 코스이다.


겨울이라 정원의 활기를 많이 잃어 심심했다. 또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한 경비 탓에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견학은 힘들어 보였다. 본관 건물은 우리 현대 건축사상 나쁜 건축물의 예로 자주 등장한다. 기왓장을 얹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띠었으면서 콘크리트로 만든 어색함 때문일 것이다. 군사독재시절 전통을 강조한답시고 억지스럽게 여기저기 짜맞춘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현대사 권력의 정점에 있던 공간을 느끼고, 본관을 겉에서라도 직접 본 것으로 만족한 견학이었다.


기념품으로 어린이들에게 지구본을 줬는데 나름 귀엽다. 청와대 견학보다는 그 주변 청와대 사랑채 견학이 나을 듯하다. 혹은 영빈관 옆 칠궁이라는 문화재는 청와대 견학 신청자에 한해서만 공개가 되는 곳인데, 조선시대 후궁들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관람이 제한되는 점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단지 보안적인 이유 때문이란다.



국회견학

국회 견학과 헌정기념관 견학을 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고, 여의도를 지나며 보아왔던 웅장한 국회의사당.


국회에서 하는 일은 크게 4가지.

-입법

-예산심의

-행정부견제

-의회외교


인터넷으로 국회에서 진행된 회의록 볼 수 있음.

또한 각 지역 의원 사무실을 방문하면 방청신청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앞에 기둥 8개 

옆면에 6개

총 24개의 기둥으로 둘러져 있는데

24절기내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기둥은 경회루의 석주를 본 따 만들어졌다고 한다.


회의장은 2개가 있는데

양당제 혹은 통일대비용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새삼 놀라게 된다.


헌정 기념관을 가면 역대 국회의장 초상과 더불어

국회의원과 관련된 여러 기록들

국회의원이 하는 일과 관련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는 남영동 대공분실. 5공화국 시절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공간이다. 김근태 의원의 고초로 많이 알려졌고, 87년 6월항쟁의 불씨가 되었던 故박종철군이 싸늘한 주검으로 시들어갔던 곳이다. 12월 31일 남영동 1985영화를 보고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더 놀라운 점은 천재건축가 김수근씨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천재성을 이런식으로 악용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이 건물에서 다른 층은 일반 사무공간과 다를 바 없지만 5층의 경우엔 예외다. 외관부터 독특한 외양을 갖고 있으며, 안에 들어가면 고문에 특화된 건축구조를 갖고 있다. 뒷문을 통해 들어가면 5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맞딱드리는데 난간도 없는 철제계단을 빙빙 올라가다보면 계단이 울리는 소리와 더불어 극심한 공포와 공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5층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는데 문의 모양이 전부 똑같고, 마주보는 방없이 모두 엇갈려 배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방과의 소통도 불가능하고, 현재 어떤 방에 와있는지 전혀 알기 힘든 구조다. 또한 방 안 창문은 길고 얇은 구조로 되어있어, 햇빛이 들어오기 힘들고,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수도 없다.



뉴지엄

조선일보 뉴지엄은 조선일보의 역사를 보기에 충분한 시설이다. 입장료는 천원이고, 조선일보와 관련된 사료가 더도 덜도 말고 관람하기에 충분히 전시되어 있다. 조선일보 초창기 신문부터 시작해, 예전에 사용되었던 윤전기 등,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일보 대표 논객들에 얽힌 이야기들도 엿볼 수 있다. 광화문 동아일보 본사에는 신문박물관도 있으니 신문제작과 언론사의 역사 그리고 언론에 관심이 많다면 참고해도 좋다. 

도길이 여행

[여행] 거제도-부산-포항

2016.12.25 23:20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온몸으로 느끼고 온 여행이었다. 기말고사 끝난 후 곧바로 떠났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산업현장인 조선소와 제철소를 방문하고, 부산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고 오는 것이었다.


거제도

 거제도는 인구 25만의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이다. 현재는 (신)거제대교로 통영과 이어져있고, 거가대교로 가덕도, 부산과 이어져 있어 더 이상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조선도시로 유명한 거제도에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장평지역에 조선소가 있어 고현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문이 6개나 될 정도로(삼성은 2개) 규모가 큰데, 아주동부터 시작해 옥포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현재 삼성중공업은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 듯해서 대우조선해양을 통해 조선소 견학을 할 수 있었다. 견학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견학장소가 중요한데 조선소 규모도 워낙 크고 문도 많다보니 장소를 착각하기 십상이다. 꼭 "정문"으로 가야한다. 또한 단순히 배가 아닌 잠수함이나 군함과 같은 방위산업도 진행하다보니 견학 도중 사진촬영은 금지.


 첫날 거제도에 5시쯤 도착해 별다른 일정없이 고현시장과 시내구경을 했다. 인구에 비해 개발이 덜 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래된 빌라,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보였다. 유명한 국밥집 충남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메뉴를 보니 소주 브랜드 중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없었고, 사람들이 좋은데이를 즐겨 마시는 것 같다. 고현시내에서 가조도나 칠천도가 가까운 섬이라고 들어 잠깐 나갔다 올까도 생각했었지만 비가 워낙 많이 오고 교통편도 안 좋아 포기했다. 계룡산 온천이라는 포로수용소 근처 찜질방에서 묵었다.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시내에 유흥업소가 무척 많은 것으로 보아 돈은 많이 벌지만 쓸 곳이 없는 노동 인력들을 위한 접대시설이 발달한 것 같았다. 거제도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살인적인 물가. 당장 김밥집과 시장에서 파는 물건 가격만 봐도 그 물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산업에 의해 돈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물가가 오른 것 같지만 그러한 임금과 고물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고 찾아봐야할 것 같다. 두번째 날 계룡산 등산을 하며 만난 아주머니께서도 물가가 비싸 부산행 시내버스 2000번이 그렇게 붐빈다고 투덜대던 말도 기억난다.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봤을 때 쌀값 등 생활물가 자체가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 같다. 


 두번째 날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계룡산 등정을 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공원은 나처럼 전문적으로 뭔가 배우려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안되겠지만 아이들이 6.25전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훌륭한 배움의 장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체험관에 들어가면 나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실제 전장상황을 생동감있게 재현해 놓았고, 35분짜리 4D 영화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3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6.25 전쟁이 포로문제 때문에 2년간 더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포로문제와 관련해 연합군과 공산국가들의 입장 차는 컸다. 전체교환과 일대일교환, 강제송환과 자유송환 등 타협해야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용소 내에는 총 17만 3천명의 포로가 있었다. 북한 15만, 중공군 2만, 기타(여성 및 등등) 3천. 수용소 철거 시 1200구 가량의 시신이 나온 것으로 보아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갈등이 심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포로는 주로 인청상륙작전과 중공군 개입이후 총 반격을 하는 중에 많이 생겼다. 또한 귀순자, 국군 낙오자, 민간인 등의 무분별한 포로처리 역시 포로 증가의 한 원인이 되었다. 


포로수용소 견학 후 주변에 있는 계룡산 등정을 했다. 거제시내와 가깝고,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니라 거제시민들에게 친숙한 산인 모양이다. 14시까지 조선소 견학이 예약되어 있어 고민을 많이 했지만 강행군을 했다. 2시간 반정도 걸리는 왕복거리를 1시간 반정도에 끝냈다. 정상에 오르면 거제 전경이 모두 보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 거제 여행을 간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계룡산에서 하산 후 조선소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옥포 조선소로 이동하려면 고현터미널을 거쳐 돌아가므로 택시 이용을 권장한다. 터널이 뚫려있어 15분 내외로 금방갈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업장은 여의도 면적의 약1.5배. 임직원은 약 4만명 가량. 원래 4만 5천명 정도였지만 조선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오천명정도 감축했다고 들었다. 


 배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배는 레고블럭과 같이 각 부분부분 블럭들을 따로 만든 후 조립한다고 했다. 여기서 배의 건조과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선박은 사용목적에 따라 상선(화물선, 화객선, 여객선), 군함, 특수작업선으로 구분 가능.

크게 수주계약, 선박건조, (선주로의) 인도로 나눌 수 있다.


1. 수주계약

- 선주사와 조선소간의 상담을 통해 선박건조 계약이 체결된다.(계약)


2. 선박건조

- 선박건조사양서에 의거 첨단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TRIBON system)을 이용해 선박을 설계한다.

- 설계는 기본설계, 상세설계, 생산설계 단계로 이루어짐.(설계)

- 선박 건조에 쓰이는 철판을 설계 도면에 따라 자른다.(가공, 강재절단)

- 철판은 선박을 이루는 각각의 블록으로 제작되고, 블록은 도크로 옮겨져 조립.(조립, 블록탑재)

- 선박의 각 부분에 들어갈 배관, 전선, 전기설비, 기계장치 등 각종 의장품을 블록조립에서 사전 설치.(의장, pre- outfitting)

- 제작이 완료된 블록을 표면처리 후 주어진 사양에 의거 도장.(도장, painting)

- 조립과 도장을 마친 블럭과 엔진을 선대에 탑재.(엔진탑재)

- 도크에 바닷물을 채워 조립된 선박을 바다로 내보냄.(진수) 각종 마무리 의장 공사를 받음.

- 건조가 완료된 선박은 실제 항해와 똑같은 조건하에서 성능 검증.(시운전)


3. 인도

- 선박이 완성되고, 시운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건조자와 선주자는 인수도의정서에 서명을 하고, 완성된 선박을 인도 및 인수하게 된다.



부산

 옥포 지역에 있는 중앙식당 두루치기로 점심을 먹고, 2000번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남포역 5시 도착 후 영도다리로 향했다. 영도다리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로 유명한 다리.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교로서 지금은 배가 지나다니지는 않고, 관광용으로 오후 2시에 한 번 다리가 열린다. 많은 피난민들이 헤어질 때 이 다리에서 만나자는 기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주변엔 자갈치 시장과 깡깡이 길이라고 불리는 조선수리업체 거리가 있다. 부모님들은 힘든 피난살이 가운데 배를 고치며,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팔며 부산의 아들과 딸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그런 삶의 치열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영도다리.


저녁에는 관광버스를 타며 부산의 야경을 관람했다. 광안대교는 갈매기의 날개를 닮은 외관이 독특한데 왕복 차선이 위 아래 복선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리라고 한다. 특히 금련산청소년 수련원에서 보는 야경이 일품이었다.  광안리까지 가는 길목에 봤던 마린시티의 전경은 마친 희망차게 솟아 오르는 부산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부산항 대교는 롤러코스터 대교라고도 불리는데 다리까지 올라가려면 빙글빙글 돌아서가야한다.


숙소는 부평깡통시장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전주, 대구 등 시장골목에서 성황리에 열리는 야시장의 원조가 바로 여기 깡통시장이라고 한다. 잡다한 먹을거리가 많고, 주변 아리랑 거리, 젊음의 거리 등등 거대한 시장권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깡통시장 근처에 보수동 책방골목도 있어 다양한 먹거리와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음날 신창국밥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보수동 책방골목을 구경한 후 시장 일대를 여기저기 구경했다. 2시에는 어제 못봤던 영도다리 도개과정도 볼 수 있었다. 서구청 건물과 그 뒤 전력공사 건물을 보고, 이바구 길이라고 불리는 부산역 앞 초량동으로 향했다. 달동네가 있는 곳인데 기나긴 계단과 함께 주변 전망이 좋아 관광지와 드라마 촬영지로 요즘들어 각광받는 곳이다. 옛 백제병원과 남선창고 터를 지나 기나긴 계단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포항

포항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옆자리 아주머니께서 잘 챙겨주셨다. 객지에서 오느라 고생한다면서 문덕온천 찜질방까지 태워다 주셨고, 동아대 전자과 교수인 자기 남편과 같은 전공이라며 반겨주셨다. 아주머니의 아버님과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포항제철소 창립 멤버였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포항제철소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지은 것인데, 3개월 일본어 공부시키고 바로 일본에 연수를 보낼 정도였으니 중책감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포항제철소는 포항 시내 어디서든지 형산강 너머로 잘 보인다. 


여기서 제철과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철강제조는 크게 제선공정, 제강공정, 연주공정, 압연공정 순으로 진행된다.



1. 제선공정 : 쇳물을 생산하는 기초과정

제철소는 항구 근처에 보통 짓는다. 그 이유는 배를 통해 운반한 철광석을 신속히 제련하기 위해서다. 배에서 철광석을 하선하는 데에만 4박 5일 정도가 소요되며, 체선료만 하루에 2천에서 6천만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철광석은 보통 가루 형태로 되어 있는데 열이 잘 전달되지 않으므로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철광석은 소결공정에서 석탄은 코크스 공정을 통해 작은 덩어리로 만든다. 작은 쇳덩이를 쇳물로 바꾸는 과정을 제선공정이라고 한다. 용광로에 석탄과 철광석을 시루떡과 같이 번갈아 넣는다. 석탄(유연탄)이 타면서 온도를 높여 철광석을 녹이고, 이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가 산화철과 환원반응을 일으켜 산소와 쇳물을 분리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 때 쇳물에는 탄소나 유황 등 불순물이 함유돼 있으며 용선이라고 부른다.


포스코에서 개발한 차세대 공법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원료를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을 없애고,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2. 제강공정 :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강철로 만드는 공정

단순한 쇳물은 불순물이 많아 가공이 쉽지 않다. 순수한 산소를 불어넣어 인이나 유황, 탄소성분을 걸러낸다. 불순물을 제거한 깨끗한 쇳물을 용강이라고 한다.


3. 연주공정 : 액체상태의 철이 고체가 되는 공정

액체 상태의 용강을 주형에 주입하고, 냉각, 응고 과정을 거쳐 슬래브나 블룸, 빌릿 등의 중간 소재로 만드는 과정이다.


4. 압연공정 : 철을 강판이나 선재로 만드는 공정

포항제철소에서 견학했던 부분은 바로 압연공정이었다. 붉게 달구어진 슬래브가 회전하는 여러개의 롤 사이를 반복적 통과하며 점점 늘리거나 얇게 만드는 과정이다. 슬래브의 열기와 소음, 그리고 비릿한 제철소의 가스냄새를 맡으며 산업의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얇게 만들어진 슬래브는 열연코일로 불리는 롤 화장지처럼 돌돌 말려나온다.


이러한 열연코일은 건축자재나 파이프 등 산업체에서 많이 쓰인다. 열연제품을 실온에서 더 얇게 가공한 냉연제품은 일반 가전제품과 자동차 프레임 등에 쓰인다. 슬래브는 또한 두꺼운 판으로도 가공 가능한데, 후판제품은 빌딩, 선박 등에 많이 쓰인다.  블룸은 다시 강편 압연기를 거쳐 빌릿으로 변하며 선재 압연기를 통해 선재로 가공된다. 선재제품은 철사 모양의 제품으로서 타이어코드, 피아노현, 교량용 와이어 등에 쓰인다.


포항제철소는 숲속의 제철소라고 불리며 방풍림이 많고, 친환경적이다. 포항제철소는 위 공정단계가 U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광양제철소는 일직선으로 만들어 공정 효율을 극대화 시켰다.


6월9일 철강의 날, 제1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터져나온 날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경제국보 1호(2호는 포니)가 1용광로라고 하니 철강산업이 경제발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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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2016.10.01 01:32

한국타이어는 proactive lab tour라는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반기 지원자들(혹은 프로그램 신청자)을 대상으로 회사를 견학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아침 7시 40분에 역삼역 근처 한국타이어 본사로 집결했고, 버스에 탑승 후 대전에 있는 중앙연구소로 향했다. 참석인원은 총 130 - 160명 정도되었다.


대전중앙연구소는 독일, 중국, 일본, 미국과 함께 5개의 한국타이어 글로벌 연구소 중 하나

타이어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실이 있는데 그 중 3개를 견학했다. 

첫 번째는 무향실. 방 안에 들어가면 소리를 흡수하는 격자무늬의 흡음제가 벽 주변에 둘러져있고, 타이어를 굴리는 기계가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타이어 앞에 마이크가 설치돼 있는데 타이어의 소음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파일럿 플랜트. 타이어를 대량 생산하기 전 소량의 시제품을 얻기 위한 소규모의 공장. 타이어 생산에 필요한 여러 공정을 간략히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flat trac. 러닝머신에서 평평한 면이 돌듯 flat한 면이 계속 움직이고, 그 위에 타이어를 접촉시켜 방향을 움직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운전 중 노면에서 타이어는 다양한 마찰환경에 처하는데 그런 여러 경우를 테스트하는 공간이라고 하셨다. 


중앙연구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근처 새로운 연구센터인 테크노 돔으로 이동했다. 현재 공사 진행이 덜 되어 사진촬영과 내부 진입은 불가했다. 영국의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맡아 매우 유려한 경관을 지닌 연구소였다. 건물의 선이 딱딱하지 않고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최첨단의 느낌을 잘 살렸다.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정거장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테크노 돔은 '소통'을 최우선으로 두는 건물. 사무공간에는 파티션이 없거나 낮게 설계되어있고, 천장을 포함해 대부분의 벽이 유리로 되어있다. 흔히 우리가 연구실하면 떠오르게 되는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버린 혁신적인 사옥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금산공장을 방문. 금산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의 타이어공장이라고 한다. 연구는 대전에서 하지만, 생산은 금산에서 하는 구조. 공장에 직접 들어가보니 대부분 자동화가 돼있어 사람들이 직접 다루는 경우는 드물었다. 공장 옆에는 운전을 하며 타이어를 직접 테스트하는 G-trac 이라는 트랙이 있다. 방문인원이 많아 일부 인원만 직접 운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됐다. 전문 드라이버가 사람을 태우고 매우 빠른 속도로 트랙을 돌기도 하고,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급격한 회전을 하는 등 스릴 넘치는 운전 경험을 제공한다.


일정은 4시 반이 조금 넘어 끝났고, 본사에 다시 돌아오니 7시 반정도 됐다. 타이어 산업도 매우 최첨단의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안전, 환경, 극지방과 같은 다양한 노면 환경, 여러 차종을 고려하면 타이어의 미래는 무궁무진했다. 업계 사람 말로는 약 3000종의 타이어가 있다고 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은 원래 타이어업체로 시작했는데 현재 전장부품까지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국타이어도 단순히 타이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변 영역으로 사업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미국,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점차 커지는 반면 중국은 저가공세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중요시한 새로운 연구센터도 인상깊었고, 지원자와의 소통을 위해 이런 견학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매우 바람직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고, 설령 나처럼 지원할 의지가 없더라도 견학을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아 나중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도길이 여행 타이어, 한국타이어

[견학]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방청

2016.09.11 01:27

뉴스에서 늘 봤던 익숙한 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방청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견학을 갔다왔다.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고, 크게 민사사건방청, 형사사건방청, 판사님과의 대화 크게 3부분으로 진행된다. 한 달에 1-2번 열리고, 게다가 선착순 20명이므로 월말에 재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판사님 소개를 받고,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민사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직접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보통 변호인을 통해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약간 지루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처럼 변호사가 유려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보통 그러한 논리는 서면으로 제출하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는 이미 모든 내용을 서로가 다 아는 상태에서 진행이되고, 판사는 변호사에게 미비된 서류를 부탁하거나 일정을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형사사건은 민사사건보다 분위기가 험했다. 자주색 법복을 입은 검사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증인을 심문하는 판사와 검사의 날카로운 질문도 이어졌다. 서류 뭉텅이를 들고다니는 검사와 변호사의 모습도 인상깊었다. 한편으론 증인의 말을 툭툭 끊으며, 말을 함부로 하는 판사의 태도에 불쾌하기도 했다. 증인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심적 부담이 되는 마당에 판사의 공격적인 태도까지 더해지면 증인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민사, 형사사건 방청이 모두 끝난 후 처음에 봤던 판사님과 질문 답변 시간을 가졌다. 법조인이 되기위한 진로에 관련된 질문이 앞도적으로 많았다. 기념품과 수료증을 배부받고 마쳤다.


법원에 도착한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죄를 짓지도 않았지만 사람을 주늑들게 만드는 권위적인 건물 그리고 법원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그 엄숙한 풍경들 때문일 것이다. 법은 약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과연 우리나라 법이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는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권위적인 건물에 들어서면서 약자들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생각보다는 오히려 힘 앞에 굴복할 생각을 먼저하지 않을까? 또한 난해한 한자어로 범벅이 된 법률용어 앞에 그들은 솔직하게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법은 아는 사람들만의 규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 혹은 증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법정에 들어가면 판사 앞에서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마치 병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몸의 아픈 부분을 말하듯이 사람들은 판사들에게 마음의 아픈 부분을 호소했다. 판사님과의 대화에서 법조인으로서의 가장 큰 자질 중 하나는 경청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다른사람의 억울함을 말과 글로 자세하게 들어주고 올바른 재판을 선고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뜻이다. 


약한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주는 따뜻한 권위를 지닌 법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도길이 여행 검사, , 법원, 법조인, 변호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방청, 판사

[여행]인도차이나_라오스

2016.02.15 16:23

비엔티엔

-비엔티엔 도착.(1.21) 라오스의 수도. 라오스는 캄보디아와 느낌이 비슷했다. 마치 프놈펜에 온 것 같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라는데 아무것도 없다. 저녁에 강변에 있는 야시장에 갔었는데 밤거리도 조용하다.

-자전거를 타고 빠뚜싸이와 파 탓 루앙 방문. 빠뚜싸이는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 떠 만든 승전기념탑. 미국에서 공항을 지으라고 준 시멘트로 멋진 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 위에 올라갈 수 있고, 멀리 대통령 궁도 보이고 비엔티엔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파 탓 루앙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라오스 화폐에도 나와있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중국애가 갑자기 말을 건다. 이야기를 하다 내일 아침 방비엥을 같이 가기로 결정. 비엔티엔 주변에 부다파크가 있다길래 거기를 갈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


방비엥

- 방비엥 도착.(1.22) 경치가 나름 괜찮은 작은 동네. 앞에 돌산이 있고 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 사람들은 그 강을 따라 카약도 하고, 튜빙도 하면서 논다.

- 숙소를 잡고, 주변 산책을 했다. 강변에선 중국판 우결을 찍고 있었다. 중국엔 예능 촬영 스태프들이 없어서 한국 스태프들이 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최근 쯔위사태 관련해서 대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중국애는 신이나서 중국 근현대 역사를 쭉 말해주는데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 방비엥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맛있는 팬케이크를 먹으며 꾹민당 꽁산당 이야기를 하다니. 그리고 틈만 나면 중국어로 쏼라쏼라. 이건 중국어로 뭐고 저건 뭐고 끊임없이 중국어를 쓰고, 말이 안통하면 또 중국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숙소에선 혼자 금강경을 틀면서 따라 읽는다. 나는 최대한 배려해서 한국어는 일절 안 쓰는데. 이게 중화사상인가? 

- 저녁엔 방비엥에서 제일 핫하다는 사쿠라바에 갔다. 익숙한 한국노래가 많이 나온다. 한국인들이 여기저기서 외국인들과 어깨동무하며 꼬레아를 연발한다. 처음엔 눈치 보다가 나중엔 미친듯이 놀았다. 금요일 저녁은 정글파티가 있다고 했다. 중국애는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가고, 난 궁금해서 툭툭을 타고 사람들끼리 갔는데 옆자리 앉은애가 고대애였다. 고대애들이랑 같이 정글가서 또 미친듯이 놀고, FM도 몇년만에 처음했다. 숙소 근처에 와서 해장을 하는데 혼자 라면먹는 모습이 불쌍했는지 현지애가 같이 먹자고 부른다. 새벽 4시에 숙소 복귀. 

- 다음 날 카약킹과 동굴튜빙을 같이 했다. 건기라 물이 없어서 그런지 카약킹은 무척 힘들었다. 튜빙하는 사람들은 암초처럼 강변에 두둥두둥 떠다님. 지루해 보였다. 카약 가는 버스 타기 전 우연히 호치민에서 만난 한국 누님들을 마주쳤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카톡 아이디를 교환하고 저녁에 같이 밥먹음. 부산출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었다.

- 중국인 친구는 루앙프라방 보내고, 나는 도미토리로 옮겼다. 거기서 만난 한국인 형과 어제 만난 부산누님들과 블루라군 출발. 조그만 웅덩이에서 물놀이 하는 곳인데 사람이 많을 땐 목욕탕처럼 바글바글하다고 한다. 다행히 날씨가 춥고 비가 오는 바람에 사람은 많이 없었다. 위에 있는 동굴도 가보고 다이빙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저녁은 신닷이라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감.

- 방비엥은 약쟁이들의 도시로 유명하다. 외국인들이 주는 술이나 혹은 술집에서 주는 공짜술은 되도록 마시지 말 것.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모른다. 

- 샌드위치 장사로 빌딩을 사셨다는 아주머니도 직접 봤다. 비결은 24시간 영업. 쪽잠을 자며 손님들이 올 때마다 계속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한다. 현지인들도 다 아는 독한 아줌마란다. 빌딩 매입 후에는 12시면 퇴근한다고 한다.

- 한국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1년 전 꽃보다 청춘에 라오스가 나온 이후 여기는 한국인들이 발에 치인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여행 끝나고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따로 찾아봤다.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 도착.(1.25) 여기도 마찬가지로 작은 동네, 기막힌 자연경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아담한 집들이 많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이 때부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좋은 기억은 많이 없다. 방비엥에서 여기 오는 길에 한국인 부부를 만남.

- 다음날 아침 탁발(탁밧)행렬 구경. 비가 많이 와서 대충 구경함. 낮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과 꽝시폭포 방문. 비오고 날씨 추운데 물놀이할 생각으로 옷 챙겨감. 결국 혼자 다이빙하면서 놀았다. 일행들은 구경만 함. 저녁에 바베큐 뷔페.

- 3일째 되던 날 간단히 도시 구경. 승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면서 낮에는 혼자 돌아다님. 도미토리에서 만난 형도 여기 왔다길래 저녁에 푸시산도 올라가고, 야시장에서 기념품도 샀다. 아침에 디엔비엔푸 출발.


디엔비엔푸

- 디엔비엔푸 도착(1.29). 가는 길은 무척 험난했다. 하지만 여행 중 제일 인상깊은 길. 파도가 일렁이듯 들쑥날쑥 펼쳐지는 광활한 산맥 뒤로 넘어가는 일몰도 멋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물건도 여러 사람이 만지면 색이 바래듯 너무 많은 사람을 거치면 도시의 향기를 잃는다는 것. 도시가 돈과 쓰레기로 얼룩진다. 그래서 디엔비엔푸처럼 조용한 도시가 좋았다. 버스를 13시간 타고 저녁늦게 도착해 하룻밤 묵고, 다음날 반나절 시내를 돌아다니고 하노이로 다시 왔다. 여행 중 가장 짧은 일정이었지만 가장 인상깊은 도시. 여행 중 보통 기대를 많이하면 실망도 큰 법인데 이 도시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전적지인 다부동과 왜관 지역과 비교해보면 보통 전적지에는 기념관 몇 개 있고, 볼 게 하나도 없는데 이 곳 경치는 최고였다. A1 언덕에 오르면 분지 지형이라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싼 산이 보이고, 가운데 평평한 시내가 보인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라는 시편 125편 2절의 구절이 떠올랐다. 실제로 디엔비엔푸는 예루살렘에 맞먹는 베트남의 성지다.

- 디엔비엔푸는 프랑스를 격퇴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이 있었다. 이 장군의 전쟁 스타일은 전투에서 지지만 전쟁에서는 이긴다는 전략. 아무리 많은 병력 손실이 있더라도 끝내 전쟁에서는 이기고 만다는 집요한 책략이다. 그래서 때론 무모해 보이지만 좋게 말하면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기상천외한 전투를 많이 벌인다. 한 가지 예가 테트공세를 펼쳤을 때이다. 월남과 월맹은 설 연휴(테트)에는 서로 휴전하기로 약속하지만 베트콩이 약속을 어기고 기습을 한다. 기만 작전이었던 것. 베트콩은 숨어서 게릴라를 펼치는 부대인데 기습을 하는 바람에 거의 전멸 직전까지 간다. 하지만 그 결과 사이공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중요 시설이 공격을 당하고 이 모습이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된다. 이 전투를 통해 월맹은 끝까지 싸울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 내 반전여론에 불을 지폈다. 미국의 유명한 앵커는 미국 대사관이 습격 당하는 것을 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저는 미국이 이기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지압 장군은 우리나라의 이순신에 비견될만큼 20세기에 길이 남을 명장이고, 베트남이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디엔비엔푸는 산세가 무척 험하다. 마치 산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섬처럼. 프랑스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분지 지형에 모든 전투력을 결집시키지는 않았을텐데 설마 여기까지 대포를 끌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민족이다.

도길이 여행 꽝시폭포, 디엔비엔푸, 라오스, 루앙프라방, 반전, 방비엥, 베트남전쟁, 보 응우옌 지압, 블루라군, 비엔티엔, 빠뚜싸이, 사쿠라바, 샌드위치, 승려, 정글파티, 카약킹, 탁발, 파 탓 루앙

  1.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 별 내용도 없는데 잘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여행]인도차이나_태국

2016.02.11 20:37

방콕

- 태국은 카지노가 불법. 그래서 캄보디아 국경 도시인 포이펫까지 버스를 타고와 카지노를 하고 돌아간다. 시엠립에서 포이펫에 도착한 후 카지노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출발. 방콕 롬비엔에서 지상철과 버스를 타고 겨우 숙소에 도착. 방콕의 유명한 한인 숙소인 디디엠에 묵음.(1.14) 형님들이 많이 계셔 카오산 로드에 대해 물어봤더니 12시부터 시작이라며 같이 술마시러 나감. 생각보다 작은 거리에 실망했지만 분위기는 무척 핫함. 거리가 넓어서 맘에 들었다.

- 첫째 날 왕궁과 왓 포, 왓 아룬을 갔다옴. 왕궁은 가격에 비해 대실망. 중국인들 바글바글하고, 날씨는 덥고, 입장료는 비싸고(무려 500바트) 최악이었다. 차라리 프놈펜에 있는 캄보디아의 왕궁을 가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다.

- 둘째 날은 주말이라 주인 아주머니가 짜뚜짝 시장을 추천해주셨다. 엄청 큰 시장이라 먹을 것도 많고 기념품도 삼. 시장 구경 후 시암으로 가 백화점 몇 곳을 둘러본 후 수상버스 타고 복귀.

- 태국은 친일국가. 그냥 친일이 아니라 거의 일본의 경제 식민지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7일동안 태국 여행하면서 한국 자동차는 딱 1번 봤다. 기아 봉고차. 일본은 태국의 도로를 건설해주고 그 대가로 장기간의 통행료와 일본 차들의 관세를 낮추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 결과 도로는 온통 도요타 천지. 담배피는 형님이 말씀하시길 자국 담배도 담배갑 양면에 기괴한 사진이 붙어있지만 일본산 담배는 사진이 한 면에만 붙어있다고 한다. 그 외에 국가 거대 프로젝트가 있으면 일본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관례라고 할 정도이니 일본과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가보다.

- 마지막 날 바에서 놀다가 다른 사람들은 피곤하다고 들어가고, 형님 한 분과 남게 되었다. 알고보니 94학번 국문학과 대선배님 그리고 전주가 고향이라고 하셨다. 다음날 치앙마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출발 몇분 전 파투. 오랜 여행 친구를 갑자기 만났기 때문이다. 여성분이셨다. 친구분과 반갑게 이야기 하더니 치앙마이가 아니라 방콕 남쪽으로 같이 떠나셨다. 옆에서 보던 큰형님은 수컷은 다 똑같다며 위로해주셨다. 치앙마이 가는 버스까지 배웅해주셨는데 방콕에 머무르는 중 삼겹살도 사주시고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 디디엠은 숙소 치고는 조금 비싼 편. 도미토리가 일반 싱글룸 가격과 비슷하다. 좋은 시설이지만 그래도 가성비는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한국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분의 삶도 정말 멋있었고, 15년전 방콕에서 클럽으로 시작했던 사업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카오산 로드는 전에 일본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별로 없고, 지금은 한국 사람들도 한 풀 꺾였다고 한다. 작년부터 중국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고 들었다. 일본 배낭여행객들은 요즘 남미로 간다고 한다. 배낭여행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일한중 순으로 거쳐가나보다.

-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 형님들과 주로 어울렸는데 좋은 학벌과 대기업에 다니는 분들이셨다. 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머리를 식히러 온 것 같았다. 한창 일해야될 나이에 여행지에 장기간 투숙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아마 한국 현실에 지쳐서 이곳으로 피해왔을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애들은 한국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던데 두 모습이 너무 대비되어 기분이 묘했다.


치앙마이

- 치앙마이 도착(1.18). 치앙마이는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 무척 핫하다. 이유가 궁금해 왔는데 큰 실망이었다. 성벽 안에는 구 도심이 있고, 밖에는 신 도심지가 있다. 구 도심지 안에는 사원 몇개 있는 것이 전부. 태국 관광청에서 출판한 가이드 북에는 이런 말이 써져있다. 치앙마이 없이 태국에 왔다고 할 수 없고, 도이수텝 없이 치앙마이에 왔다고 할 수 없다. 도이수텝도 갔다왔지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이수텝은 치앙마이에서 높은 산에 있는 사원으로 올라가면 치앙마이 전경이 보인다. 그리고 금빛이 반짝거리는 탑이 있다. 방콕에서 봤던 것과 새로운 것이 없다. 은사원 중심에 있는 사원 들렀다 구시내 산책 후 도이수텝 이동
- 다음 날 1박 2일 트래킹 출발. 나 혼자 동양인이고, 나머지 모두 유럽인이었다. 프랑스인 5명, 독일인 2명, 영국인 2명, 에스토니아 1명. 에스토니아 애는 초반에 바위에서 뛰어다니다 인대가 늘어났는지 다시 돌아감. 여행 중에는 안전 사고에 유의 또 유의해야한다. 독일애들이 나랑 비슷한 또래라서 트래킹 중 같이 어울렸다.

- 평소에 독일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내가 독일 국가를 안다며 짧게 불렀던 한 소절이 나치 시절의 독일 군가였다. 애들이 기겁을 하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의아했는데 본의 아니게 큰 실례를 했다. 영화에서 본 국가를 아무 의심없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큰 충격이었던 것은 그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이다.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정말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 일본과 우리나라가 본받아야하지 않을까? 역사는 자긍심을 가지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닌 정확한 역사를 배워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학창시절 열심히 학교 다니고, 영어 학원도 잠깐 다녀봤지만 막상 외국인들과 대화하려고하면 짧은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나는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슨 공부를 한 것인지 깊은 회의감이 든다. 와세다 대학교의 구호이기도 한 거화취실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교육은 제발 솔직해야한다.

- 서양애들은 이름을 중요시 여긴다. 처음 만나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을 처음 만나면 이름 보다도 나이가 더 궁금하다. 

- 저녁에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마을 애들이 우르르 오더니 준비한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이쁘다는 모습보다는 얼마나 연습했을까하는 안타까움과 아이들의 순수함까지도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돈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과 인간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궁금하다면 돈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동남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곳이면 돈이 스멀스멀 들어가 관광지로 만들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 길거리의 풍경 조차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사람들은 들어가 자고, 나는 멍석을 빌려서 자리를 깔고 별 구경을 했다. 전기가 없는 곳이라 달을 벗삼아 수많은 별들과 소곤거리는 즐거움을 누렸다. 옆에는 아직 타다만 장작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고요했다. 너무나 적막해 바흐음악을 틀었는데 여기가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독일애들은 여행 다이어리를 쓰는지 저녁에 계속 뭘 적었다. 심지어 만난 사람들 싸인도 받고 다녔는데 나는 한글이름과 한자이름을 모두 써줬다. 하롱베이에서 만난 독일애들도 다이어리를 적던데 대단한 애들이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저녁에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무척 인상깊었다. 여기 몇 명 사는지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지 등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가이드북을 봐도 서양과 우리나라는 차이가 크다. 물론 각자의 여행스타일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에 있어서 진지함이 약간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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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길이 여행 도이수텝, 독일, 동대문, 디디엠, 방콕, 치앙마이, 타페, 태국, 트래킹

[여행]인도차이나_캄보디아

2016.02.11 19:59
프놈펜
- 금호버스를 타고 캄보디아 국경 넘음.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지만 출국과 입국도장만 잘 받으면 된다. 의외로 도장 모으는 재미가 있다. 프놈펜 밤늦게 도착. 늦은 밤이라 뚝뚝이란 걸 처음 타고 여행자거리로 이동. 베트남과는 너무나 다른 문자와 문화가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이것도 태국 라오스를 거치니 지루해졌다.
- 하룻밤 자고 본격적인 프놈펜 첫 날(1.9) 킬링필드와 뚜엉슬랭 수용소만 갔다옴. 75년도 크메르루즈는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을 죽인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위해. 노동과 농업을 숭상하는 순수한 공산주의 국가. 그래서 안경 쓴 사람, 손에 굳은 살이 없는 사람 등 어처구니 없는 기준을 만들어 지식인들을 죽이고, 도시인들을 강제이주 시킨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바뀐 혁명인 듯. 스탈린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 만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했다. 이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슬픔보다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폴 포트는 선생 출신으로서 원칙과 소신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만 분별없는 소신과 원칙이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불러왔다. 원칙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생각났다.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물론 지키지도 않지만)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에서 인간의 편협한 본성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와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수많은 킬링필드를 만든다. 우리들은 정치적으로 뜻이 다른 사람들, 타종교인들, 성소수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지운다. 폴포트와 다른 점이 뭘까? 권력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는지 아니면 권력이 없어 마음속으로 죽였는지 그 차이일 뿐.
- 도시 빈민들이 많았다. 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람들이 누워있거나 꿈틀거려 놀랐다. 밥 먹다가 그런 사람들이 오면 밥을 사주기도 했다. 불우한 이웃들에게 돈을 직접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들은 물론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준다고해서 삶이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밥을 사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착한 물가는 사람도 착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시엠립
- 미니밴을 타고 시엠립 도착(1.10). 프놈펜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너무 험난했다. 비포장도로라 놀이기구 타듯이 몸이 몇 번을 붕 떴는지 모른다. 시엠립은 앙코르와트가 있는 곳.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밴에서 만난 콜럼비아 애들과 간단한 저녁.
- 인터넷 커뮤니티에 앙코르 자전거 투어인원을 구하는 글이 있길래 연락해서 같이 가기로 함. 일정이 하루 어긋나 앙코르 외에 첫 날에 둘러볼만한 곳이 없나 찾았다. 숙소 아주머니가 룰루오스 초기 사원군을 추천해주셨다. 거리는 15km 정도 되는데 한번 갔다오면 자전거가 맞는지 안맞는지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서 가볍게 갔다올 생각으로 숙소를 떠났다. 하지만 티켓은 앙코르와트 입구에서 구매해야 하므로 거기까지 갔다오는 거리와 룰루오스 근처에서 헤맨 거리까지 포함하면 그날 족히 40km는 달렸다. 룰루오스 바콩사원 주변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살고, 잘 안 알려진 명소라 조용하다.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차들이 바글거리는 앙코르 톰보다는 이곳이 훨씬 낫다.
-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과 저녁을 함께 했는데 갑자기 몸이 안 좋다며 파투를 놓았다. 결국 혼자 자전거 타며 관광하기로 결정. 첫째날 빡세게 자전거를 타니 그 다음부턴 껌이었다. 다음날에는 앙코르 와트 부조를 하루종일 감상하고 바이욘 사원을 들른 후 복귀. 가게에서 쉬고 있다가 현지인들과 친해짐. 킬링필드에 대해서 아냐고 물어보니 대부분 잘 몰랐다. 다른 식으로 배우는지, 의도적으로 해당 사실을 배우지 않는지, 아예 배울 기회가 없는지는 의문이다. 폴 포트 외에 거대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 느낀 건 루머들이 너무 많다는 것. 교육과 언론이 잘 갖추어져있지 않아서 그런지 이상한 낭설들을 많이 내뱉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이 앙코르를 99년간 빌려갔다, 자기 국왕이 호치민을 이겼다는 식이다.
- 앙코르 와트 부조의 섬세함과 인물들의 역동성은 정말 최고였다. 제일 좋아하는 부조는 우유바다를 휘젓는 장면. 착한 세력이 나쁜 세력에게 자꾸 밀리자 같이 힘을 합쳐 불멸의 약인 암리타를 얻자고 꼬드긴다. 그리고 뱀(나가)으로 산을 휘감고 바다를 젓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압사라라고 하는 무희들이 바다에서 탄생하고, 결국에 암리타라고 하는 약을 얻자 악한 세력 몰래 약을 빼돌린다는 이야기. 좋아하는 이유는 구슬동자처럼 생긴 애들이 힘을 합쳐서 줄다리기 하는 듯한 모습이 너무 귀엽다.
- 앙코르에서 만난 한 캄보디아 청년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나보다 한국 연예계에 대해 정통했는데 한류 파워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은 엑소가 인기. 한국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어서 무척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새벽4시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비영어권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 말도 안되는 캄글리쉬, 콩글리쉬로 하는 대화는 고역이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 문제를 이야기하며 쏘아이라고 하는데 알고보니 soil을 의미했다.
- 한국에 대해서 너무 큰 동경을 갖고 있기에 솔직히 말해줬다. 우리들은 여기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고. 그리고 TV에 나오는 애들은 쌍꺼풀 기본에 코 높이고 턱 깎은 거라고. 타고난 아름다움이 아닌 만들어진 거라고. 
- 캄보디아 사람들은 베트남을 싫어한다. 그것도 모르고 베트남 모자를 쓰고 앙코르를 돌아다녔다. 싫어하는 이유는 국경 문제 때문.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을 싫어하는데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이다.

- 새벽4시에 이야기를 마치고 일출을 보러가려고 했는데 숙소에서 자전거를 잠가버렸다. 자전거 키는 갖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1시간 동안 주변 숙소와 바에서 자전거를 빌리러 다니다 포기. 그 다음날 늦게 일어난 후 방콕을 가려고 알아봤으나 보통 차는 오전에 있었다. 결국 그 날 하루는 푹 쉰 다음 일출을 다시 한번 도전하고 방콕으로 떠나기로 결심. 아침도 미리 준비하고, 자전거도 미리 준비해 놓았지만 다음날 구름이 많은 관계로 실패. 앙코르 톰을 크게 한바퀴 돌고 국경도시 포이펫으로 떠나는 버스 탑승.

- 결과적으로 하루 더 있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전날 숙소에 디파짓으로 12달러를 맡겼었는데 만약 그 날 방콕으로 떠났다면 못 찾을 뻔했다. 도둑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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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도차이나_베트남

2016.02.08 19:00

하노이

- 인천공항에서 짐을 대신 부쳐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어차피 배낭 하나 들고가는 신세라 무료로 수하물을 부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써도 무방할 거라 생각하고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베트남 사람의 짐을 부친다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같은 일행이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남의 짐을 대신 부쳐주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섬뜩했다.

-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도착.(12.29) 베트남 비자 문제로 2시간 동안 헤매다가 결국 그냥 나왔다. 베트남 비자문제는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비자법이 최근에 바뀌는 바람에 사람마다 말이 모두 달랐다. 결국 캄보디아 숙소에서 40$를 주고 해결. 분명한 사실은 15일 무비자는 확실하지만 한 달 이내 재입국 시에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다. 이 때도 재입국을 어디서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한국인지 혹은 주변국인지. 또한 비자를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현지에서 받는 것이 싸고 빠르다.

- 첫 날 숙소를 잡지 못해 걱정하고 있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리무진에서 만난 현지애가 구해줬다. 이름은 YEN이고, NGO단체에서 HIV예방 관련일을 한다고 했다. 한달 뒤 하노이에 왔을 때 다시 만났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 두 번째날 자전거를 타고 하노이 근방을 돌아다녔는데 잠시 주차 공간을 찾는 중 앞바구니에 놓았던 자물쇠를 잃어버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두리번 거리는 몇 초 사이에 가져간 것.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한 사고. 베트남에는 은근히 좀도둑들이 많다. 수많은 여행객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베트남 현지인조차도 조심하라고 했다. 특히 호치민시티에 대해선 유난히 안좋은 이야기가 많다. 오토바이로 핸드백을 잡아채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 하노이 저렴한 숙소, 시장골목은 호안키엠 호수 주변에 다 몰려있다. 유명한 관광명소(문묘, 성채, 박물관, 호치민 관련 유적지)는 호치민 묘소 주변에 있다. 호수에서 묘소까지는 2km 거리로 무척 가까운 편. 호치민 묘소는 여행 중 가장 각별한 곳이다. 하노이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하루에 한 번은 꼭 갔는데 자전거, 차(우버), 버스로 모두 이동해 보았다. 여행의 처음을 여기서 시작했고, 끝을 여기서 마무리했다. 


여행 초, 묘소에 도착해 탁 트인 바딘광장에 철푸덕 앉았다. 그 땐 정말 힘들었다. 일단 말이 너무 안 통했고, 내 귀와 코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는 매연냄새와 경적소리. 무질서한 교통체계. 도보 타일 제각각이고, 보행신호도 찾아보기 어렵고, 역주행은 다반사. 자전거를 오토바이처럼 타본 적은 처음이었다. 길을 건너려고 하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달려드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베트남인들은 현대판 기마족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옛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도시는 온갖 문화의 잡탕같은 느낌이었다. 도저히 질서라고는 도로 위든 건물에서든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너무 지쳤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져야할지, 어떤 관광지를 가야할지 잘 몰랐고, 틈만나면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에게 어설픈 외국인처럼 보일까봐 아예 말을 안하고 다녔다.


한달 뒤, 여기를 다시 왔을 때 전에 했던 것처럼 광장에 앉았다. 호치민 묘소를 바라보며 여행 중 함께했던 짧은 인연들을 잠시 생각했다. 한달 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호치민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한 후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하롱베이에선 이태리 친구들과 같이 지냈고, 하롱베이에서 하노이 오는 길에 신학을 전공하는 형과 버스에서 만남. 마지막 날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같이 귀국함.


후에

- 세번째 날 슬리핑 버스를 타고 후에로 떠났다. 타지에서 그리고 버스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배낭을 짐칸에 맡겨야된다는 사실도 모른채 같이 들고 탔는데 무거운 배낭과 함께 부대끼며 12시간동안 버스를 탔다. 

- 후에 도착 후 버스에 내리는데 70대 할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하셨다. 처음 만난 한국인. 같이 식사를 하고 숙소도 같은 곳에 잡았다. 70대 할아버지가 무슨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앞에서 태사랑을 언급하며 어떤어떤 정보를 찾았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연세에 그렇게 준비한다는 것이 대단했다. 준비를 떠나 여행을 마음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가.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어르신이 현지인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어울리고, 가격도 신나게 깎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는 어찌나 그리 잘 돌아다니시는지 현지인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 웃었다. 그 어르신을 보며 외국인들과 어울리는데는 유창한 영어 보다도 자신감있는 콩글리쉬 한마디, 박력있는 애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말보다 진심어린 마음이 앞선다. 그 선생님 덕분에 그 다음날 숙소 사장으로부터 커피도 얻어마실 수 있었다.

- 영수증 확인을 잘해야겠다고 생각. 후에에서 호이안 가는 버스표를 끊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르신 표까지 같이 결제되어있었다. 환불은 안됐다. 동남아에서 주머니에 한 번 들어간 돈은 웬만해선 잘 나오지 않는다. 돈을 지불하는 순간 확인을 잘 해야한다.

- 몇년 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 먼저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선도 비슷하기에 후에에서 만나게 되었다.

- 후에는 베트남의 경주같은 곳. 응우옌왕조의 왕궁이 있다. 왕궁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을 잡아야할 정도로 무척 크다. 베트남 전쟁 시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곳곳에 총탄의 흔적이 있다. 온통 붉은색 범벅이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베트남 말과 억양을 보아도 중국과 비슷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왕궁도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라 그렇게 인상깊은 도시는 아니었다.

- 후에에서 DMZ투어를 했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은 단 한사람도 보지 못함. 전쟁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의미깊은 투어는 아니다. 동하 지역을 통해 격전지였던 케산을 방문하는 일정인데 미군기지가 있던 록파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다리, 호치민 루트가 있던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케산전투는 월맹에 포위당한 미군이 어마어마한 물량과 화력으로 맞서 싸운 전투. 미국은 제2의 디엔비엔푸가 될 것을 염려해 사상 최대의 폭격을 케산 일대 적군 기지에 퍼붓는다. 미국은 적에게 포위당한 이상 빨리 철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위해 전략상 중요하지도 않은 지역을 사수했다. 이 전투를 월맹의 양동작전의 일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얼마 후 월맹은 그 유명한 테트(설날)공세를 벌였기 때문이다. 전투의 승리를 떠나 정치적으로 완벽한 미군의 패배였다. 케산전투 이후 반전시위는 급격해졌고, 이후 미국은 밖으로는 월맹, 안으로는 베트콩, 국내에선 반전여론과 싸워야했다.


호이안

- 여섯째 날(1.3) 호이안 도착. 작고 조용한 마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변을 따라 등불이 많아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중학교 동창과 밤늦게 인도음식을 먹으러 가는 바람에 야경을 놓침. 특별한 관광명소는 없고 도시 골목골목 좁은 길들 그리고 건물들이 소박하다.

- 다음날 미손유적지를 방문했다. 고대 참파왕국의 유적지인데 흰두교 사원. 앙코르 초기 룰루오스 지역에서 비슷한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오는 길에 대만, 일본애와 친해져 같이 밥을 먹었다. 

- 호이안에서 나짱가는 버스 좌석이 화장실 옆자리였다. 여행 중 내가 맞닥뜨린 가장 큰 시련.ㅠㅠ


나쨩

- 베트남 관광지 중 무이네, 다낭, 나짱은 모두 해변가인데 3개 중 나짱을 골랐다. 들은 바로는 무이네는 사막이 있는 조용한 해변가. 다낭은 나짱과 같이 리조트가 무성한 시끌벅적한 관광지.

- 여덟째 날(1.5). 나쨩 첫 날에 성요셉대성당과 롱선사 그리고 탑바온천 방문. 온천이 무척 외진 곳에 있어서 교통편 구하기가 힘들었다. 주변 한식당에 들어가 온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되냐고 물어보니 마침 그 주변에 사는 직원이 퇴근한다고 태워줌. 고마운 마음에 마스크팩을 선물로 줬다. 탑바온천은 머드온천으로 유명한 곳인데 가격이 저렴해 가볍게 갔다오기 좋은 곳. 올 때는 무작정 걷다가 오토바이 태워준다는 아저씨와 협상해 오토바이 타고 옴.

- 두번째 날 빈펄랜드와 호핑투어를 고민하다 혼자 놀이공원 가는 것보다는 섬을 돌아다니는 호핑투어를 신청. 유명한 투어라길래 호기심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생각만큼 많이 맑지는 않았지만 수영을 하는데 물고기와 산호초가 보여 신기했음. 이 투어는 선상파티로도 유명한데 각 나라 사람들이 나와 춤을 추는 파티이다. 노래는 각 나라의 유명한 민요 혹은 노래를 틀어준다. 마지막으로 코리아를 찾는데 유일한 한국인이라 앞에 나가서 말춤 열심히 추다 내려왔다. 아리랑과 강남스타일을 틀어줬는데 안타깝게도 가사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춤만 춤. 노래를 못 부르니 노스코리아에서 왔냐는 오해를 받음. 오전에는 아쿠아리움 방문을 하는데 무척 저급의 수족관이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선상파티 후에는 물에 뛰어들어 튜브를 끼며 간단한 약주를 즐기고, 다른 섬을 방문해 물놀이를 한 후 나쨩에 도착한다. 슬리퍼가 물에 떠내려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노는 바람에 맨발로 도착.

- 버스는 풍쨩버스를 이용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버스란다. 터미널에 들어가는데 한 여직원이 방글방글 웃는다.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단순한 친절을 넘어 너무 야릇했다. 빤히 쳐다보기 무안해 같이 싱글싱글 웃어줬다. 핸썸하다고 하면서 나한테 계속 질문을 퍼붓는다. 나이는 몇 살이냐, 여자친구 있냐, 페이스북 하냐 등등. 기분이 좋아 마침 갖고있던 마스크 팩을 뿌렸다. 급하게 버스를 타느라 연락처를 남기지 못해 나중에 전화를 하니 말이 잘 안통한다. 아까 마스크팩 뿌린 한국인이라고 말을 해도, 가운데 있는 여자애 바꿔달라고 애원해도 소통이 잘 안돼 결국 포기. 고아라 닮은 직원분이었는데 아쉬웠다.


​호치민
- 열번째(1.7) 날 호치민 도착. 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니 냉방병에 걸렸다. 새벽에 호치민 도착했는데 계속 설사를 했다. 빨리 숙소를 잡고 싶은데 가는 곳마다 방이 없거나 비쌌다. 호치민은 하노이보다 더 번잡스러운 도시였는데 안 좋은 몸상태로 무거운 배낭을 매고 돌아다니니 미칠 것 같았다. 결국 3시간 정도 헤맨 끝에 게스트하우스 도착. 하지만 체크인을 하려면 1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위에 공용 휴게실에 가서 계속 잠을 잤다. 체크인을 하려고 내려가니 한국분들이 계셔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누님들이었는데 이제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려던 차에 나를 만났던 것. 그 분들과는 라오스 방비엥에서 우연히 만나 재밌게 놀았다.
- 호치민은 시끄러운 하노이느낌. 광화문 광장하고 비슷한 호치민 광장도 있고, 하노이와 비슷한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물이 많다. 빌딩도 하노이보다 많아 도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호치민보다는 사이공이라는 말이 더 멋있게 들린다. 사람들도 사이공으로 더 많이 부르는 듯. 하노이와 사이공은 선의의 경쟁을 한다고 한다. 하노이는 수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사이공은 베트남 최대의 경제수도라는 지위를 확고히 하기위해.
- 베트남 여행의 테마는 전쟁이었기에 다음날 구찌터널을 방문했다. 신투어리스트를 통해 예약했는데 한국인들이 많았다. 버스 옆자리에는 호주인이 앉아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투어를 다녔다. 베트콩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부비트랩들을 볼 수 있었다. 미군 전사자의 대략30%가 대나무로 만든 부비트랩으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땅굴도 있었는데 오리걸음으로 겨우 지날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길이가 무려 200km라고 한다. 넉살좋은 한국인 선생님도 만나 즐거운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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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을 보고 미신이라고 지껄이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낙서를 보고 욕하는 것과 똑같다. 거기에 얼마나 순수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는지 충분히 느낄 필요가 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종교의 역할에 대해 조금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똑같은 신을 믿고 있었을텐데 종교가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니깐 나도 매점에서 늘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이제는 다른 맛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싶고, 나에게 잘 맞는 아이스크림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남자들은 주로 운송업에 종사를 많이하고, 여자들은 노점상이나 영업활동을 많이 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베트남 여성들은 무척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투감각이란 책에서도 베트콩들을 심문할 때 남자들은 보통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까지 알려주며 살려달라고 비굴할정도로 빌었지만 여성들은 입을 잘 열지 않았다는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 여행을 통해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그 느낌이다. 늘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현실 감각을 배우고 싶은 것. 사실 그 현실 감각이야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단지 그 나라의 역사, 언어, 문화를 책을 통해서 빠삭하게 공부한다고 그 나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부딪치면서 얻는 그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느낌과 직관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 여행했을 때 직원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원이요".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하다 "천만예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책에서 배웠을 것이다. 이렇듯 책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그 경험을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론과 경험을 골고루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 길을 걷다보면 "you motorbike", "motorbike sir" 등과 같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저녁에는 "lady boom boom(?)".  


- 관광지는 획일화되어있다. 숙소거리(혹은 여행자거리) 따로 있고, 필수 관광 명소도 정해져있고, 거기까지 가는 운송수단도 똑같다. 길거리 음식도 거의 비슷하다. 아침에 도착하면 숙소부터 잡는다. 숙소 밀집 구역에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걸어가든지 혹은 대중교통(자전거)을 이용해 관광지를 둘러본다. 보통 여행자거리 근처에 관광명소들이 있다. 하루는 몇군데 다니며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다음날에는 보통 투어를 신청해서 바람도 쐬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투어 끝난 후 시간이 남으면 전 날 가지 못했던 곳을 가든지 잠깐의 여유를 가졌고, 저녁이 되면 슬리핑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그렇게 하면 이틀 간격으로 도시를 구경할 수 있다. 원래는 여유를 가지고 도시를 둘러보려고 했으나 너무나 똑같은 여행지에 실망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자체라고나 할까? 현지인들의 삶을 둘러보거나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보다는 만들어진 세계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며칠 더 머무른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 더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을 생각보다 타이트하게 다니게 되었다.


​- 게임과 관광은 비슷한 면이 많다. 화려한 그래픽은 관광자원(자연환경)에, 안정적인 서버 운용능력은 관광 인프라에, 게이머들의 특성은 그 나라의 매너와 문화에 비교할 수 있겠다. 작년 룸메가 게임을 무척 좋아하길래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게임이 좋은 게임이냐고.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는데 할 게 많은 게임이라고 했다. 그렇듯 이용자들의 환타지를 만족시키고, 그 안에서 충분히 놀게해야 좋은 게임이다. 게임을 하면서 전사나 마법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듯 여행을 통해 그런 환상을 "충분히" 심어줘야 한다. 또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단 하나밖에 없는 순간을 원한다.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혀야 한다. 또 그런 기념품을 만들어내고, 그런 시간을 제공해야한다.


-​ 바가지를 당하지 않는 가장좋은 방법은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사는 것이다. 며칠 있다보면 대략적인 물가가 잡힌다. 물건을 보고 적정한 가격을 제시한 후 타협을 하든지 아니면 안 사면 그만이다. 한국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깎으려는 모습을 가끔 봤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으로 고속도로도 깔았다. 마음의 여유를 갖자. 여기에서 한 두푼 돈 아낀다고 부자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조금 더 주고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바가지라고 해봤자 오백원, 천원이다. 가격 깎는 것 자체를 즐겨야지 무조건 싸게 사려다 시간과 마음의 피로도가 증가할 수 있다.


-남대문 시장에서 한국 기념품을 사려다 비싸기도 하고 들고가기도 애매해 그냥 마스크팩 20장을 샀다. 정말 요긴하게 잘 썼다. 동남아에서 한류 파워가 대단한데 한국 제품이라는 점에서 애들이 무척 좋아했고, 처음 써보는 마스크팩에 신기해했다. 처음 사람들을 사귀는 입장에서 선물은 서로의 벽을 허무는 강력한 망치가 된다. 입장료를 받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자기도 뭔가 주고 싶다면서 작은 엽서에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베트남 기념품을 주기도 했다. 한국 연예인들 인기가 대단하니 연예인 관련 제품이나 화장품이 선물로는 괜찮겠다. 혹은 한국산 과자나 라면도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 여행을 하면서 무서웠던 점은 시간개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이 몇요일인지 며칠인지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된다. 월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늘 같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시간 개념마저 잃어버린 다는 뜻은 현실의 완벽한 도피.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외국에선 내가 외교관이다.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자부심을 갖자. 개인의 행동이 모여 한국의 품격과 이미지를 만든다.


-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점은 화장실 향이나는 과일 두리안과 화장품 향이나는 나물 고수. 우리나라에 들여오고 싶었던 물건은 화장실에서 봤던 범건(물총). 비데보다 훨씬 좋고 청결하다.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라는데 아무튼 그 물건이 그립다.


- 여행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뭘 먹을까? 어떤 걸 살까? 어디를 갈까? 내가 가진 자원(시간과 돈)을 이용해 최적의 시간배분과 동선을 짜야한다. 때로는 선택을 통해 성취감도 느끼고 후회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 웃음과 가벼운 목례는 만국의 인사. 잘 웃고, 인사만 잘해도 여행이 한결 편해진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고,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한다. 


- 말이 안 통해서 조금 힘들었다. 내가 먹는 과일 혹은 시장에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원하는 답변을 얻기 힘들었다. 뭔지 물어보면 무작정 가격만 외친다. 로컬 음식점이나 가판대에선 더욱 힘들다. 과일주스 대신에 콩주스를 먹은 적도 있고, 그림보고 음식을 골랐다가 뱀장어 죽을 먹은 적도 있다. 가이드북에 있는 집을 잘 못 들어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물쌈을 먹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잔뜩 샀다가 힘들게 해치우기도 했다. 


-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인생은 짧고 세계는 넓다는 사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큰 도시보다도 시골위주로 다녀야겠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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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도차이나_준비

2016.02.03 01:32

인도차이나 여행은 베트남 때문에 가게되었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군 전역 후 읽었던 <전투감각> 때문에 알게되었다.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 가야하는 곳이니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베트남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나보다.


그 운명을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2015.12.29 - 2016.02.02 총 35일에 걸쳐서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를 돌아보았다. 작년 도쿄여행과는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작년에는 잘 곳, 갈 곳을 미리 다 정하고 동선까지 미리 완벽하게 준비했다. 심지어 일본 관련 책들도 나름 심도깊게 읽었다. 하지만 이번엔 준비시간이 부족했다. 아니, 애초에 준비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무작정 항공권만 들고 뛰어들었다. 가이드북은 전자책으로 다운받아서 갔는데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


결정적인 이유는 전도사님과의 대화였다. 올해 4학년. 취업이나 대학원을 가면 더 이상 한 달 이상의 방학은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늦기 전에 여행을 가자는 생각이 앞섰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고, 찾아보니 저렴한 항공권이 있기에 큰 고민없이 바로 질렀다.


막상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보다도 베트남 전쟁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여행은 단지 전쟁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더 느끼기 위한 수단일 뿐.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는 생애 첫 방문이라 무척 흥미로웠다. 군에서 무작정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고 절대악이라는 논리에 의문을 품고 전역 후 공산주의관련 책도 찾아봤다. 한 때 세계의 반을 지배했던 이념 그리고 군부독재시절 학생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기독교는 유난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나는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고 불교의 교리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전쟁, 공산주의 그리고 불교. 이 3가지 호기심을 품에 안고 여행을 떠났다.


그렇다고해서 심도있게 무언가를 관찰하거나 조사하지는 않았다. 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일 뿐. 괜한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하러 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돌아다녔다. 공부를 많이해서 여행지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얼핏 보고 들었던 것들이 나중에 책을 읽을 때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젊은 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보고, 낯선 환경에 부닥쳐 봤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동선은 다음과 같다. 이동거리와 시간은 구글맵을 이용해 어림잡아 구했다. 버스는 숙박비를 아낄 겸 주로 슬리핑버스로 이동했고, 출입국 수속 밟는 시간을 제외하면 이동시간은 약간 줄어들 것이다.


베트남 : 디엔비엔푸(1), 하노이(6), 후에(2), 호이안(2), 나쨩(2), 호치민(2)

하노이 - 후에 : 660km 12시간

후에 - 호이안 : 130km 4시간

호이안 - 나쨩 : 530km 12시간

나쨩 - 호치민 : 450km 9시간


캄보디아 : 프놈펜(2), 시엠립(4)

호치민 - 프놈펜 : 220km 6시간

프놈펜 - 시엠립 : 270km 5시간


태국 : 방콕(4), 치앙마이(3)

시엠립 - 방콕 :  380km 10시간

방콕 - 치앙마이 : 600km 12시간


라오스 : 비엔티엔(1), 방비엥(4), 루앙프라방(3)

치앙마이 - 우돈타니 : 400km 12시간

우돈타니 - 비엔티엔 : 65km 3시간

비엔티엔 - 방비엥 :  110km 5시간

방비엥 - 루앙프라방 : 100km 4시간


루앙프라방 - 디엔비엔푸 : 200km 13시간

디엔비엔푸 - 하노이 : 300km 12시간


총 육로이동 거리 : 약 4615km

총 이동시간 : 약 119시간



다음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혹은 여행을 갔다온 후 참고했던 책의 목록.


전쟁

존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전쟁을 개시한다.

"여기 까지 왔지만 , 더 넘어 가지 못 하리니" 욥기 38장 11절


베트남 전쟁은 박정희 정권의 알라딘 램프였다. 북한에 선제 도발함으로써 일부러 긴장감을 조성했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했다. 베트남 파병에 대한 무리한 대가를 요구하며. 미국은 추가 병력을 보내고 싶어도 반전 여론에 부딪쳐 힘든 상황이었다. 그 당시 우리정권은 이러한 미국의 어려움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파병인원 32만

5000명의 전사자

11000명의 부상자

16만의 고엽제피해자

50억 달러 상당의 경제적 실익.


전쟁이 점점 힘들어지자 후임자 닉슨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로 선서를 한다.

"그가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장 4절, 미가4장 3절


애초에 명분 없는 공허한 전쟁이었다. 우리나라 군의 임무는 북베트남과 싸우는 것이 아닌 남베트남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것이었다. 타국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의 집요한 싸움을 계속했던 것이다. 베트남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은 조작으로 밝혀졌고, 군기는 형편없었다. 대마초가 걷잡을 수 없을만큼 퍼져있었다. 남베트남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도 못했다. 민관군이 하나가 되지도 못했고, 전투의지도 없고, 정신도 나약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적은 미국 내의 반전여론이었다.


무기 : 헬리콥터, M16, 네이팜탄, B52융단폭격

영화 :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 굿모닝베트남.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박태균 著)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은 곧 정치다. 그런 관점에서 최고의 책. 베트남 전쟁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각종 사료(보고서, 담화)를 통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호치민을 너무나 싫어해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인원을 파병했을까? 베트남 전쟁은 철저히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그 당시 정치상황을 통해 전쟁의 깊은 속내를 들춰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역사의 터닝포인트 : 베트남전쟁(지소철 著)

전쟁의 경과에 대해 짧게 훑어보기 좋은 책. 전자책으로 구할 수 있고, 정말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 마지막에 정리하는 용도로 괜찮다.

베트남의 호 아저씨 호치민(김이은 著)

청소년을 위한 호치민 위인전. 두꺼운 호치민 평전에 비해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호치민, 혁명과 애국의 길에서(다니엘 에므리 著, 성기완 옮김)

시공사에서 나온 시리즈 교양시리즈 중 하나. 그림 자료가 풍성하다. 여행 중 읽으려고 가져갔으나 다 읽지 못함.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

아직까지 읽히는 리영희 선생님의 명저. 베트남전쟁 부분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읽지 못함. 추후 읽어보겠음.


공산주의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장 44,45절


공산주의에 대해 알려면 공산당 선언이 필수. 얇은 책이지만 읽기가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공산주의가 나오게 된 역사적인 배경을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기는 무척 어렵다. 일단 자본주의의 원리에 대해 깊이 알아야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헤겔철학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헤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계급투쟁과 노동 그리고 공산당이 꿈꾸는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모두 헤겔로부터 기인한다.

-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강유원著)

절판되어 어렵게 구한 책. 별로.

-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명 - 공산당 선언(박찬종著)

공산당선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책.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 역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불교

기원전 6세기 고타마 싯다르타 탄생. 카필라국 마야부인과 정반왕 사이에 태어남

29세 출가. 생로병사를 접하고 왕위포기 머리깎음

6년동안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고행. 마침내 크게 깨달음. 그의 나이 35세.

삼법인 : 부처가 인정한 오류없는 진리. 불교의 3가지 근본교의.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걱정.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오강남 著)

이 책의 저자는 비교종교학자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이웃 종교로서 불교를 접할 수 있다. 


그것과 더불어 미개함에 대해서 배우고 싶었다. 관례와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 눈에는 체계가 없는 동남아인들을 미개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미개함이란 곧 솔직함, 유연함, 순수함을 의미한다. 



동남아문화 산책: 신윤환의 동남아 깊게 일기

이 책은 동남아 문화에 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체계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동안 동남아 연구를 해온 저자의 경험과 느낌이 묻어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동남아 문화를 바라본다는 점. 흥정하듯이 들쭉날쭉 타협의 나라, 자유분방하고 틀이 없는 나라. 다음은 그 예이다.

 

-국경의 모호함

동남아 지역은 뚜렷한 국경이 없었다. 현재 국경은 열강들의 식민지 침탈 후 강제적으로 설정된 것.

-거주와 천도의 자유로움

-성관념 결혼제도의 자유

태국에 레이디보이들이 많듯이 우리나라에 비해 개방적인 성관념을 갖고있는 듯하다.

-핵가족화 

과거 우리나라는 대가족사회였지만, 동남아는 핵가족 위주라고 한다. 혈통에 기반을 둔 친족사회가 없음. 

-게릴라전

베트남전에서 빛을 발했던 특유의 게릴라전.

-오토바이

-마음의 여유 낙천적

동남아 인들의 낙천적인 성격은 마음을 유연하게 쓰는 데에 기인하지 않을까?

-카스트제도 혹은 중앙집권이 뿌리 내리지 못함

동남아는 인도화의 영향으로 힌두문화가 많이 유입되었지만 카스트제도와 중앙집권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말레이어의 유연함

-다양한 종족 언어 다문화 사회



동남아 연구 관련해 국내는 베트남 연구하시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이유는 베트남 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국내 유인선 박사, 최병욱 박사가 유명하다. 

동남아 역사와 관련해 anthony reid의 다음 책이 유명하다. <history of southeast asia>

밀턴 오스본의 <한 권에 담은 동남아시아 역사>도 잘 알려져 있는 책이다. 동남아 역사를 개괄하기에는 좋지만 개별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국내 동남아 역사 연구는 무척 열악하다. 주로 프랑스와 일본과 같이 한 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나라들에서 연구가 활발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돈이 되는 연구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딱히 주목받지 못하는 동남아 국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모양.



TIP

*달러를 많이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달러는 환전하기에도 편하고, 동남아 곳곳에서 화폐처럼 사용가능하다. ATM에서 뽑아쓰는 돈은 수수료가 상당하다. 3-5$정도. 또한 이중환전이 되는 것으로 알고있다.

*비닐을 많이 챙기자. 현지에서 비닐을 버리지 않고 늘 챙겼는데 요긴하게 썼다. 슬리퍼를 챙기지 않았을 때 급하게 비닐슬리퍼를 만들어 신기도 했고, 배낭 속 짐을 정리할 때, 가방이 비에 젖을 때 비닐로 다시 한번 싸면 방수기능도 되기 때문이다.

*일주일 이상 머무는 경우 유심칩 구매 권장. 무제한 요금제도 무척 저렴한데다 와이파이 인프라가 부족해 인터넷 사용이 쉽지 않다.

*짐은 최대한 줄이자. 필요한 물품은 현지에서 다 구할 수 있다.

세면도구 : 샴푸, 바디워시, 클렌징폼

비누는 챙기지 않았다. 물에 묻은 비누를 늘 갖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고, 차라리 솔을 갖고 다니며 바디워시로 몸을 씻는 것이 훨씬 편했다. 솔은 금방 마르기 때문.

옷 : 티셔츠 1장, 반바지, 긴바지, 양말 4켤레, 팬티 4장. 

바지와 티셔츠는 면이 아니라 나일론 재질로 된 옷을 챙겼다. 물에 빨아도 금방 마르기 때문이다. 티셔츠 1장으로 열흘을 버텼지만 손빨래로는 한계가 있어 현지에서 1장 더 구매. 물로 금방금방 빨아쓸 수 있는 스포츠타올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수건을 가져간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듯.

*우비 필수. 비가 많이 와서 우비를 요긴하게 사용. 일회용 우비여도 말려서 계속 사용 가능.

*간단한 파우치. 여행 팜플렛이나 티켓 등 기념품을 모아놓기 편하다.

*여권 복사본과 사진 여분 꼭 챙기기. 호텔 데스크에서 여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급하게 비자를 갱신할 경우 사진이 필요하다,

*보조가방 챙기기. 아침에 숙소에 체크인하면 가방과 짐은 숙소에 맡기고, 보조가방을 메고 돌아다닌다. 크로스백처럼 옆으로 메는 가방이 요긴하다. 옆구리에 가방을 차고다니므로 아무래도 도난의 위험이 조금 덜하다. 

*간단한 선물 챙기기. 마스크 팩과 같은 가벼운 화장품 혹은 한국 연예인 관련 아이템이 좋다. 가벼운 선물은 현지인들과 친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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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길이 여행 공산주의, 동남아, 라오스, 배낭, 베트남, 베트남전, 보응우옌지압, 불교, 열강, 인도차이나, 전쟁, 캄보디아, 태국, 헤겔, 호치민

  1.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 별 내용도 없는데 잘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견학]NCSOFT

2015.08.28 00:42

판교에 있는 ncsoft사옥 방문. 취준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옥초청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취업보다는 게임산업이 궁금했다. N동과 C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판교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있다. 


ncsoft는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 소울로 유명한 회사. nc는 next company의 약자라고 한다. 창업자 김택진씨는 성공한 벤처 1세대로 유명하고, 천재소녀 윤송이씨와의 결혼으로 또 한번 주목받았다. 현재는 nc다이노스 구단주이기도 하다.


김택진씨의 회사 비전과 관련된 영상을 5분간 보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기에 구애받지 않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즉, 모바일만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폰이든 온라인이든 어떤 수단에서도 할 수 있는 게임. 그리고 인공지능을 게임에 처음으로 적용시켜보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사장 직속으로 A.I(인공지능) 연구실을 두었다. 연예기획사가 아닌 진정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꿈꿨다. 게임 뿐 아니라 여러 사업에 파급효과를 주는 진짜 엔터테인먼트 회사.


채용담당자는 ncsoft가 규모가 제법 커져서 업계에선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비해선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점은 건물이 게임회사 임에도 불구하고 벤처 느낌 보다는 조직이 잘 갖춰진 대기업 느낌이 물씬 풍겼다는 것. 게임회사면 건물 외부 혹은 내부에 아기자기한 게임 캐릭터가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책이 분명히 나뉘어져 있었다. 요즘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직급을 없애거나 통일시키는 것이 유행인데 직급이 대리, 차장, 부장 등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누군가 채용담당자에게 직급과 관련된 질문을 하자 형식적으로 나눴다는 답변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직급이 의미가 없다고 해도 직급이 분명히 있고, 호칭을 하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나타날 게 뻔하다. 또한 각종 복지 시설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목욕탕에 임원들을 위한 시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걸로 봐서 임직원 구분이 명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채용담당자가 퇴사율과 근속연수를 당당히 밝히는 점이 인상 깊었는데 왜냐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타 기업에 비해서 근무환경이 좋다고 설명했다. 게임프로그래머 Q&A 시간도 있었다. 개발자는 ncsoft에서 C++을 주로 개발언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언어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코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C++이라면 어셈블리 코드를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네트워크라면 패킷을 직접 확인한 적이 있는지? 원리를 잘 아는 것이 한편으론 그만큼 문제해결능력이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어실력도 강조하셨다. 단순히 점수를 위한 영어가 아닌 정보 습득을 위한 영어 말이다. 만약 프로그램 관련해서 영어 자료를 던져줬는데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을 하는데 큰 차질이 있을 것이다. 학점보다도 어떤 과목을 수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쉬운 과목을 들어서 받은 좋은 학점보다 난이도 있는 수업을 듣는 것을 추천했다. 개발자는 제너럴리스트라고 했는데 그만큼 모든 것을 다 잘해야 된다는 뜻이고, 나중에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것을 못한다면 회사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게임 개발은 크게 기획,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3가지 파트로 일을 한다고 했다. 아래에 있는 다큐를 보면 게임 캐릭터 간의 밸런스와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 뿐만 아니라 사운드 작업까지 게임 개발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lZXvXx4o6E&list=PLsqVg4rAAukMwXUadIO3km7nncvK8TcR1&index=6

☞게임개발 관련 다큐


종 교육과 회의가 이루어지는 n.c university

☞ 헬스장

☞12층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한 도서관. 몬스터 항목이 따로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12층에서 내려다 본 판교 전경.

☞ 방문 기념품. nc다이노스 모자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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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길이 여행 IT기업, NCSOFT, 개발자, 게임, 리니지, 취업

  1. 판교는 맛집 찾아 한번 가봤는데! 정말 색다르더라

  2. 판교는 뭔가 강남 느낌이야.ㅋㅋ 빌딩만 있고 삭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