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덕수궁

2015.07.30 21:02

덕수궁 투어 신청. 이현이 해설사님과 함께 덕수궁과 정동 근방을 돌아다녔다. 덕수궁 주변엔 대사관과 한국근현대건물들이 무척 많기 때문에 구한말 우리나라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동은 원래 정릉이 있던 자리여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우리나라엔 궁이 5개 있다. 창창 경경경으로 외우는 법을 알려주셨다.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경희궁. 각 궁궐의 대문 이름에는 화(化)자가 들어가는데 백성들을 변화시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만들었다고 한다. 광화문, 돈화문, 인화문, 흥화문, 홍화문 등 백성들을 밝고, 두텁고, 넓고, 어질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덕수궁 문을 통과하면 작은 다리가 하나 보인다. 서양의 성에는 해자가 있기 때문에 다리가 방어의 의미지만, 우리나라는 연결의 의미. 예를 들어 왕궁의 다리는 왕과 백성을 연결시키는 수단이고, 절의 다리는 중생과 부처가 만나는 곳이다.


덕수궁 돌담길은 노래 가사에도 많이 나오고 돌담길과 관련된 무성한 소문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궁궐 건립 당시 조선왕실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서 궁궐 주변으로 담을 짓지 못했다고 한다. 돌담길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대감(이항복)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덕수궁에는 곳곳에 잔디가 있어 마치 공원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원래 궁에는 잔디가 절대 없어야 한다고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잔디는 산소와 같이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만 있어야 하기때문이다. 즉, 잔디가 있는 곳은 죽음의 공간인 셈이다. 악랄한 일제는 궁궐에 잔디를 심으며 경건한 궁을 장난스럽게 만들어버렸다. 덕수궁 뿐 아니라 창경궁 안에도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궁궐 문 앞에는 용으로 부조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황제가 안에 산다는 의미라고 한다. 용은 황제 봉황은 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종은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라고 불렀다.


궁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여러 돌들이 있었다.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돌은 전돌. 품계석이 있는 곳에 깔려있는 돌은 박석이라고 불리는 울퉁불퉁한 돌인데 비 오는 날 미끄럼을 방지하고, 난반사를 유도해 임금의 눈이 부시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임금은 상감 그리고 품에 따라 차례대로 대감, 영감, 나으리로 불려진다.


덕수궁 준명전 앞에 큰 마로니에 나무가 있는데 네덜란드 대사가 고종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마로니에를 심어줬다고 한다. 준명전에는 난간을 설치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덕혜옹주가 어렸을 때 그 곳에 살았다고 한다.


광명문은 원래 함녕전 앞에 있었는데 옮겼다. 지금의 광명문에는 신기전, 자격루가 있었는데 해설사님은 바보문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원래 위치와도 다르고 덕수궁과 전혀 관련없는 쌩뚱맞은 물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덕수궁 주변엔 미 대사관, 영국 대사관, 성공회교회, 러시아대사관 등이 있어서 주변의 궐이 많이 축소되었다. 예부터 회화나무는 학자를 상징했기 때문에 유학자들의 집이나 궁궐에 많이 심었다. 지금 예원학교 앞에 있는 회화나무가 덕수궁 권역 내에 있는 나무였다고 한다. 열강의 땅따먹기로 지금 크기로 축소된 것이다.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이뤄진 곳으로 원래는 덕수궁에 포함된 건물이었다.


손탁호텔을 찾으려고 했으나 지금은 이화여고 안에 터를 표시하는 안내판만 남아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을 지은 사바찐은 독립문과 정관원을 설계했고,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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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돌아가심

2015.04.19 00:08

6월 28일 새벽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87년, 세월의 짐이 많이 무거우셨는지 짐을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로 훌훌 떠나버리셨다. 할머니는 4월 신병위로외박 나갈 때만해도 껄껄껄 웃으시며 멀쩡하셨다. 그런데 5월 중순에 숨이 차다고 병원에 진단받으러 가셨다가 뒤늦게 간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신 것이다. 본인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할머니가 떠나는 순간까지 알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병명을 알려서 할머니를 낙담시키기보다는 편안히 삶을 마감하는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대학교1학년 때, 토요일 저녁만 되면 할머니집에 가서 맛있는 과일이랑 과자도 먹고, 일요일에는 할머니랑 교회가서 점심먹고 오곤했었다. 교회에서 비빔밥이 자주나왔고, 가끔 특별한 날에는 떡이 나왔는데 할머니는 그 떡을 늘 몇개씩 더 챙겨오셨다. 그리고 쌍문동 할머니라는 단짝친구분과 늘 교회에서 같이 나오셨다. 할머니집에서 잠깐 쉬다가 학교 기숙사로 복귀할 때 쯤이면 할머니는 많이 아쉬우셨는지 가끔 과일을 비닐봉지에 잔뜩 싸주시기도 하셨고,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가 가는 길을 쳐다보시곤 하셨다.


사람은 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죽음은 다른 동식물들의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할머니가 나에게 준 영향과 할머니와의 추억이 나로 하여금 슬픔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모두 일찍 여의신 우리 어머니는 죽음에 대해서 무척 담담하셨다. 내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엄마가 나한테 말씀하셨다. 각자 갈 길 가는거니깐 너무 슬퍼하지말고, 그리고 엄마 자신이 그런 일에 처하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지각함과 동시에 피투된존재에서 기투된존재로 바뀐다고 말했다. 즉,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 태어난(던져진) 존재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세상에 내던지는 존재로 바뀐다는 말이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늘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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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길이 생각

[여행]대구

2015.02.08 22:07

첫째날

전날 익산역 앞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고,

익산역(7:13)→대전역(8:30) 1시간 20분소요

대전역(8:40)→왜관역(10:07) 1시간 30분 소요


왜관과 다부동일대 전적지를 둘러보기위해 멀고먼 길을 떠났다.

 왜관 지역은 작오산전투, 왜관철교폭파, 융단폭격이 이뤄진 곳이다. 다부동전투와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위한 6.25 최대 격전지. 호국의 다리 근처엔 일제강점기 6.25전쟁 유공자들의 묘비들이 있는 애국동산이 있고, 애국동산 바로 아래에는 옛 경부선 철도가 통과했던 왜관터널이 있다. 현재는 막혀있지만 터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다. 근처에 칠곡군청이 있고, 시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왜관읍이 칠곡군의 중심지인 것 같았다. 호국의 다리를 거쳐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칠곡보가 나온다. 칠곡보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졌고 물의 높이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한다. 근처에 공원도 있고, 4대강을 홍보하는 건물, 매점이 있다. 

 칠곡보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왜관전적기념관이 나온다. 6.25전쟁 중 아군과 적군의 무기와 복장이 전시되어 있다. 또 왜관전투의 간략한 경과를 알기쉽게 전시해놓았다. 기념관에서 왜관북부정류장까지 걸어갔는데 거리가 꽤 됐다. 북부정류장에서 다부동 가는 버스도 별로 없어서 오래 기다려야했다. 이 일대의 전적지를 보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1시간 정도 산을 넘고넘어 다부동 도착.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왜관전적기념관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굳이 이렇게 힘들게 와야했나싶었다. 왜관과 다부동전투를 좀 깊게 공부한 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유학산과 일대고지를 둘러보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을 것 같다.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바람과 함께 전적지를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깊은 일이었다. 이런 아픔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날

대구는 지리적으로 앞에는 비슬산이, 뒤에는 팔공산이 있는 분지지형이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신천이 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근대골목투어 코스2 시작. 동산이라는 지명은 옛 달성토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동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 현재 의료선교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청라언덕으로도 불리고, 선교기지로 쓰였다.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사과나무가 토양과 기후에 잘 맞아 한 때 대구는 능금으로 유명했다. 그 사과나무 초기종자의 아들과 손자뻘 되는 묘목이 있다. 대구에 미인이 많은 이유는 사과에 비타민C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교사들의 주택은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서양식의 붉은 벽돌집 위에 기왓장을 얹었다. 그 당시 민중들의 위화감을 덜기위한 선교사들의 센스라고 한다. 선교사 주택의 주춧돌로는 대구읍성을 해체하면서 나온 유서깊은 안산암이 쓰였다. 대구는 경상도를 관할하는 관찰사가 있는 경상감영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감영을 중심으로 읍성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읍성을 허물고 현재는 동서남북이 각각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북성로는 일제시대 번화가였지만 요즘은 쇠퇴해서 적산가옥과 공구골목이 있다. 현재 읍성 동쪽에 있는 동성로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구 최대의 번화가.


청라언덕은 푸른담쟁이언덕이라는 뜻이다. 선교사주택의 담쟁이덩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무생각(박태준작곡/이은상작사)이라는 가곡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바로 이 곳이다. 박태준씨는 이은상씨의 고종4촌과 결혼했다고 한다. 근처에 은혜정원이 있는데 대구를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묘비가 있다. 선교사들은 계성학교와 신명학교를 세웠고, 아담스선교사의 아들 에드워드는 계성의 계와 신명의 명을 따 현재의 계명학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보잘것없는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했던 선교사들의 값진 마음이 무척 감사했다.


청라언덕에서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90개의 계단이 있다. 선교사들이 자주 다녔다고 해서 선교사길, 삼일운동이 이뤄졌던 장소라 삼일운동길, 현진건이 이 계단을 다니며 작품구상을 했다고해서 현진건길과 같이 다양한 명칭을 갖고있는 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쌈지광장이 나온다. 광장바닥에 연대순으로 중요한 사건을 적어놓아 대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계산성당은 전주의 정동성당과 명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3대 성당이다. 정동성당은 윤지충의 순교지에 세워졌고, 명동성당은 언덕에 있는데반해 계산성당은 평지에 있다. 계산동의 명칭은 계수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6번 수상한 천재화가 이인성씨가 계산성당을 배경으로 그린 나무그림이 무척 유명하다. 그 나무는 이인성 나무라 불린다. 성당을 중심으로 이상화, 서상돈 고택이 있다. 두사충이라는 명나라 장수가 귀화해서 대구에 자리잡았는데 그 사람과 관련된 뽕나무거리가 있다.


효종임금은 대구를 한약거리로 만들것을 지시했다. 그것이 대구의 한방거리 약령시 탄생의 배경이다. 약령시 한방박물관이 있고, 그 앞 에코건물에서는 단 돈4000에 15분 전신안마체험과 한방차를 마실 수 있다. 약령시를 거쳐 영남제일문이 있던 중앙로 자리 옆에는 조그만 골목이 있다. 진골목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길다고 하는 대구의 사투리 질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일대는 대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당깊은 집: 김원일 著>의 실제 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진골목을 쭉 걷다보면 어르신들의 아지트인 미도다방과 40년대부터 골목을 지켜온 정소아과의원건물이 있다.


10시부터 12시까지 가이드와 함께 투어했다. 자세하고 광범위한 설명, 건물 혹은 지명에 얽힌 비사, 깨알같은 웃음과 함께한 유쾌한 시간여행이었다. 청라언덕에선 다같이 동무생각을 부르고, 삼일운동 길에선 다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다음에 다시한번 대구에 들러서 서문시장에서 더 먹고, 계산동 일대의 옛 향기를 느끼고 싶다.


-시장문화발달

-대구은행, 대구백화점 향토브랜드의 강세, 배타적?

-사투리는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

-정치적인 배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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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길이 여행 근대골목투어, 낙동강, 다부동, 대구, 약령시, 왜관, 전적기념관, 청라언덕, 칠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