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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도차이나_베트남

2016.02.08 19:00

하노이

- 인천공항에서 짐을 대신 부쳐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어차피 배낭 하나 들고가는 신세라 무료로 수하물을 부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이 써도 무방할 거라 생각하고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베트남 사람의 짐을 부친다고 하니 항공사 직원이 같은 일행이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남의 짐을 대신 부쳐주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섬뜩했다.

-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 도착.(12.29) 베트남 비자 문제로 2시간 동안 헤매다가 결국 그냥 나왔다. 베트남 비자문제는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비자법이 최근에 바뀌는 바람에 사람마다 말이 모두 달랐다. 결국 캄보디아 숙소에서 40$를 주고 해결. 분명한 사실은 15일 무비자는 확실하지만 한 달 이내 재입국 시에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다. 이 때도 재입국을 어디서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한국인지 혹은 주변국인지. 또한 비자를 한국에서 받는 것보다 현지에서 받는 것이 싸고 빠르다.

- 첫 날 숙소를 잡지 못해 걱정하고 있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리무진에서 만난 현지애가 구해줬다. 이름은 YEN이고, NGO단체에서 HIV예방 관련일을 한다고 했다. 한달 뒤 하노이에 왔을 때 다시 만났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 두 번째날 자전거를 타고 하노이 근방을 돌아다녔는데 잠시 주차 공간을 찾는 중 앞바구니에 놓았던 자물쇠를 잃어버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두리번 거리는 몇 초 사이에 가져간 것.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한 사고. 베트남에는 은근히 좀도둑들이 많다. 수많은 여행객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베트남 현지인조차도 조심하라고 했다. 특히 호치민시티에 대해선 유난히 안좋은 이야기가 많다. 오토바이로 핸드백을 잡아채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 하노이 저렴한 숙소, 시장골목은 호안키엠 호수 주변에 다 몰려있다. 유명한 관광명소(문묘, 성채, 박물관, 호치민 관련 유적지)는 호치민 묘소 주변에 있다. 호수에서 묘소까지는 2km 거리로 무척 가까운 편. 호치민 묘소는 여행 중 가장 각별한 곳이다. 하노이에 머무는 기간 동안 하루에 한 번은 꼭 갔는데 자전거, 차(우버), 버스로 모두 이동해 보았다. 여행의 처음을 여기서 시작했고, 끝을 여기서 마무리했다. 


여행 초, 묘소에 도착해 탁 트인 바딘광장에 철푸덕 앉았다. 그 땐 정말 힘들었다. 일단 말이 너무 안 통했고, 내 귀와 코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는 매연냄새와 경적소리. 무질서한 교통체계. 도보 타일 제각각이고, 보행신호도 찾아보기 어렵고, 역주행은 다반사. 자전거를 오토바이처럼 타본 적은 처음이었다. 길을 건너려고 하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달려드는 수많은 오토바이들. (베트남인들은 현대판 기마족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옛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도시는 온갖 문화의 잡탕같은 느낌이었다. 도저히 질서라고는 도로 위든 건물에서든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너무 지쳤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져야할지, 어떤 관광지를 가야할지 잘 몰랐고, 틈만나면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에게 어설픈 외국인처럼 보일까봐 아예 말을 안하고 다녔다.


한달 뒤, 여기를 다시 왔을 때 전에 했던 것처럼 광장에 앉았다. 호치민 묘소를 바라보며 여행 중 함께했던 짧은 인연들을 잠시 생각했다. 한달 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호치민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한 후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하롱베이에선 이태리 친구들과 같이 지냈고, 하롱베이에서 하노이 오는 길에 신학을 전공하는 형과 버스에서 만남. 마지막 날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같이 귀국함.


후에

- 세번째 날 슬리핑 버스를 타고 후에로 떠났다. 타지에서 그리고 버스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참 새로운 느낌이었다. 배낭을 짐칸에 맡겨야된다는 사실도 모른채 같이 들고 탔는데 무거운 배낭과 함께 부대끼며 12시간동안 버스를 탔다. 

- 후에 도착 후 버스에 내리는데 70대 할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하셨다. 처음 만난 한국인. 같이 식사를 하고 숙소도 같은 곳에 잡았다. 70대 할아버지가 무슨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 날 저녁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 앞에서 태사랑을 언급하며 어떤어떤 정보를 찾았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연세에 그렇게 준비한다는 것이 대단했다. 준비를 떠나 여행을 마음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가.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어르신이 현지인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어울리고, 가격도 신나게 깎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는 어찌나 그리 잘 돌아다니시는지 현지인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어이없다는 듯이 한참 웃었다. 그 어르신을 보며 외국인들과 어울리는데는 유창한 영어 보다도 자신감있는 콩글리쉬 한마디, 박력있는 애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말보다 진심어린 마음이 앞선다. 그 선생님 덕분에 그 다음날 숙소 사장으로부터 커피도 얻어마실 수 있었다.

- 영수증 확인을 잘해야겠다고 생각. 후에에서 호이안 가는 버스표를 끊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르신 표까지 같이 결제되어있었다. 환불은 안됐다. 동남아에서 주머니에 한 번 들어간 돈은 웬만해선 잘 나오지 않는다. 돈을 지불하는 순간 확인을 잘 해야한다.

- 몇년 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 먼저 베트남에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선도 비슷하기에 후에에서 만나게 되었다.

- 후에는 베트남의 경주같은 곳. 응우옌왕조의 왕궁이 있다. 왕궁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을 잡아야할 정도로 무척 크다. 베트남 전쟁 시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곳곳에 총탄의 흔적이 있다. 온통 붉은색 범벅이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베트남 말과 억양을 보아도 중국과 비슷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왕궁도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라 그렇게 인상깊은 도시는 아니었다.

- 후에에서 DMZ투어를 했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은 단 한사람도 보지 못함. 전쟁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의미깊은 투어는 아니다. 동하 지역을 통해 격전지였던 케산을 방문하는 일정인데 미군기지가 있던 록파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다리, 호치민 루트가 있던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케산전투는 월맹에 포위당한 미군이 어마어마한 물량과 화력으로 맞서 싸운 전투. 미국은 제2의 디엔비엔푸가 될 것을 염려해 사상 최대의 폭격을 케산 일대 적군 기지에 퍼붓는다. 미국은 적에게 포위당한 이상 빨리 철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위해 전략상 중요하지도 않은 지역을 사수했다. 이 전투를 월맹의 양동작전의 일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얼마 후 월맹은 그 유명한 테트(설날)공세를 벌였기 때문이다. 전투의 승리를 떠나 정치적으로 완벽한 미군의 패배였다. 케산전투 이후 반전시위는 급격해졌고, 이후 미국은 밖으로는 월맹, 안으로는 베트콩, 국내에선 반전여론과 싸워야했다.


호이안

- 여섯째 날(1.3) 호이안 도착. 작고 조용한 마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변을 따라 등불이 많아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중학교 동창과 밤늦게 인도음식을 먹으러 가는 바람에 야경을 놓침. 특별한 관광명소는 없고 도시 골목골목 좁은 길들 그리고 건물들이 소박하다.

- 다음날 미손유적지를 방문했다. 고대 참파왕국의 유적지인데 흰두교 사원. 앙코르 초기 룰루오스 지역에서 비슷한 유적지를 볼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오는 길에 대만, 일본애와 친해져 같이 밥을 먹었다. 

- 호이안에서 나짱가는 버스 좌석이 화장실 옆자리였다. 여행 중 내가 맞닥뜨린 가장 큰 시련.ㅠㅠ


나쨩

- 베트남 관광지 중 무이네, 다낭, 나짱은 모두 해변가인데 3개 중 나짱을 골랐다. 들은 바로는 무이네는 사막이 있는 조용한 해변가. 다낭은 나짱과 같이 리조트가 무성한 시끌벅적한 관광지.

- 여덟째 날(1.5). 나쨩 첫 날에 성요셉대성당과 롱선사 그리고 탑바온천 방문. 온천이 무척 외진 곳에 있어서 교통편 구하기가 힘들었다. 주변 한식당에 들어가 온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되냐고 물어보니 마침 그 주변에 사는 직원이 퇴근한다고 태워줌. 고마운 마음에 마스크팩을 선물로 줬다. 탑바온천은 머드온천으로 유명한 곳인데 가격이 저렴해 가볍게 갔다오기 좋은 곳. 올 때는 무작정 걷다가 오토바이 태워준다는 아저씨와 협상해 오토바이 타고 옴.

- 두번째 날 빈펄랜드와 호핑투어를 고민하다 혼자 놀이공원 가는 것보다는 섬을 돌아다니는 호핑투어를 신청. 유명한 투어라길래 호기심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생각만큼 많이 맑지는 않았지만 수영을 하는데 물고기와 산호초가 보여 신기했음. 이 투어는 선상파티로도 유명한데 각 나라 사람들이 나와 춤을 추는 파티이다. 노래는 각 나라의 유명한 민요 혹은 노래를 틀어준다. 마지막으로 코리아를 찾는데 유일한 한국인이라 앞에 나가서 말춤 열심히 추다 내려왔다. 아리랑과 강남스타일을 틀어줬는데 안타깝게도 가사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춤만 춤. 노래를 못 부르니 노스코리아에서 왔냐는 오해를 받음. 오전에는 아쿠아리움 방문을 하는데 무척 저급의 수족관이니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선상파티 후에는 물에 뛰어들어 튜브를 끼며 간단한 약주를 즐기고, 다른 섬을 방문해 물놀이를 한 후 나쨩에 도착한다. 슬리퍼가 물에 떠내려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노는 바람에 맨발로 도착.

- 버스는 풍쨩버스를 이용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버스란다. 터미널에 들어가는데 한 여직원이 방글방글 웃는다.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단순한 친절을 넘어 너무 야릇했다. 빤히 쳐다보기 무안해 같이 싱글싱글 웃어줬다. 핸썸하다고 하면서 나한테 계속 질문을 퍼붓는다. 나이는 몇 살이냐, 여자친구 있냐, 페이스북 하냐 등등. 기분이 좋아 마침 갖고있던 마스크 팩을 뿌렸다. 급하게 버스를 타느라 연락처를 남기지 못해 나중에 전화를 하니 말이 잘 안통한다. 아까 마스크팩 뿌린 한국인이라고 말을 해도, 가운데 있는 여자애 바꿔달라고 애원해도 소통이 잘 안돼 결국 포기. 고아라 닮은 직원분이었는데 아쉬웠다.


​호치민
- 열번째(1.7) 날 호치민 도착. 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니 냉방병에 걸렸다. 새벽에 호치민 도착했는데 계속 설사를 했다. 빨리 숙소를 잡고 싶은데 가는 곳마다 방이 없거나 비쌌다. 호치민은 하노이보다 더 번잡스러운 도시였는데 안 좋은 몸상태로 무거운 배낭을 매고 돌아다니니 미칠 것 같았다. 결국 3시간 정도 헤맨 끝에 게스트하우스 도착. 하지만 체크인을 하려면 1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위에 공용 휴게실에 가서 계속 잠을 잤다. 체크인을 하려고 내려가니 한국분들이 계셔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 누님들이었는데 이제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려던 차에 나를 만났던 것. 그 분들과는 라오스 방비엥에서 우연히 만나 재밌게 놀았다.
- 호치민은 시끄러운 하노이느낌. 광화문 광장하고 비슷한 호치민 광장도 있고, 하노이와 비슷한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물이 많다. 빌딩도 하노이보다 많아 도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호치민보다는 사이공이라는 말이 더 멋있게 들린다. 사람들도 사이공으로 더 많이 부르는 듯. 하노이와 사이공은 선의의 경쟁을 한다고 한다. 하노이는 수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사이공은 베트남 최대의 경제수도라는 지위를 확고히 하기위해.
- 베트남 여행의 테마는 전쟁이었기에 다음날 구찌터널을 방문했다. 신투어리스트를 통해 예약했는데 한국인들이 많았다. 버스 옆자리에는 호주인이 앉아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투어를 다녔다. 베트콩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부비트랩들을 볼 수 있었다. 미군 전사자의 대략30%가 대나무로 만든 부비트랩으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땅굴도 있었는데 오리걸음으로 겨우 지날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길이가 무려 200km라고 한다. 넉살좋은 한국인 선생님도 만나 즐거운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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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을 보고 미신이라고 지껄이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낙서를 보고 욕하는 것과 똑같다. 거기에 얼마나 순수하고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는지 충분히 느낄 필요가 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종교의 역할에 대해 조금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똑같은 신을 믿고 있었을텐데 종교가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니깐 나도 매점에서 늘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닌가? 이제는 다른 맛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싶고, 나에게 잘 맞는 아이스크림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남자들은 주로 운송업에 종사를 많이하고, 여자들은 노점상이나 영업활동을 많이 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베트남 여성들은 무척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투감각이란 책에서도 베트콩들을 심문할 때 남자들은 보통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까지 알려주며 살려달라고 비굴할정도로 빌었지만 여성들은 입을 잘 열지 않았다는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 여행을 통해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그 느낌이다. 늘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현실 감각을 배우고 싶은 것. 사실 그 현실 감각이야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단지 그 나라의 역사, 언어, 문화를 책을 통해서 빠삭하게 공부한다고 그 나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부딪치면서 얻는 그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느낌과 직관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 여행했을 때 직원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원이요".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하다 "천만예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책에서 배웠을 것이다. 이렇듯 책과 현실은 너무 다르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그 경험을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론과 경험을 골고루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 길을 걷다보면 "you motorbike", "motorbike sir" 등과 같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저녁에는 "lady boom boom(?)".  


- 관광지는 획일화되어있다. 숙소거리(혹은 여행자거리) 따로 있고, 필수 관광 명소도 정해져있고, 거기까지 가는 운송수단도 똑같다. 길거리 음식도 거의 비슷하다. 아침에 도착하면 숙소부터 잡는다. 숙소 밀집 구역에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걸어가든지 혹은 대중교통(자전거)을 이용해 관광지를 둘러본다. 보통 여행자거리 근처에 관광명소들이 있다. 하루는 몇군데 다니며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다음날에는 보통 투어를 신청해서 바람도 쐬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투어 끝난 후 시간이 남으면 전 날 가지 못했던 곳을 가든지 잠깐의 여유를 가졌고, 저녁이 되면 슬리핑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그렇게 하면 이틀 간격으로 도시를 구경할 수 있다. 원래는 여유를 가지고 도시를 둘러보려고 했으나 너무나 똑같은 여행지에 실망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자체라고나 할까? 현지인들의 삶을 둘러보거나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보다는 만들어진 세계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며칠 더 머무른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 더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을 생각보다 타이트하게 다니게 되었다.


​- 게임과 관광은 비슷한 면이 많다. 화려한 그래픽은 관광자원(자연환경)에, 안정적인 서버 운용능력은 관광 인프라에, 게이머들의 특성은 그 나라의 매너와 문화에 비교할 수 있겠다. 작년 룸메가 게임을 무척 좋아하길래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게임이 좋은 게임이냐고.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는데 할 게 많은 게임이라고 했다. 그렇듯 이용자들의 환타지를 만족시키고, 그 안에서 충분히 놀게해야 좋은 게임이다. 게임을 하면서 전사나 마법사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듯 여행을 통해 그런 환상을 "충분히" 심어줘야 한다. 또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단 하나밖에 없는 순간을 원한다. 전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혀야 한다. 또 그런 기념품을 만들어내고, 그런 시간을 제공해야한다.


-​ 바가지를 당하지 않는 가장좋은 방법은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사는 것이다. 며칠 있다보면 대략적인 물가가 잡힌다. 물건을 보고 적정한 가격을 제시한 후 타협을 하든지 아니면 안 사면 그만이다. 한국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깎으려는 모습을 가끔 봤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으로 고속도로도 깔았다. 마음의 여유를 갖자. 여기에서 한 두푼 돈 아낀다고 부자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조금 더 주고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바가지라고 해봤자 오백원, 천원이다. 가격 깎는 것 자체를 즐겨야지 무조건 싸게 사려다 시간과 마음의 피로도가 증가할 수 있다.


-남대문 시장에서 한국 기념품을 사려다 비싸기도 하고 들고가기도 애매해 그냥 마스크팩 20장을 샀다. 정말 요긴하게 잘 썼다. 동남아에서 한류 파워가 대단한데 한국 제품이라는 점에서 애들이 무척 좋아했고, 처음 써보는 마스크팩에 신기해했다. 처음 사람들을 사귀는 입장에서 선물은 서로의 벽을 허무는 강력한 망치가 된다. 입장료를 받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자기도 뭔가 주고 싶다면서 작은 엽서에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베트남 기념품을 주기도 했다. 한국 연예인들 인기가 대단하니 연예인 관련 제품이나 화장품이 선물로는 괜찮겠다. 혹은 한국산 과자나 라면도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 여행을 하면서 무서웠던 점은 시간개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늘이 몇요일인지 며칠인지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된다. 월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늘 같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시간 개념마저 잃어버린 다는 뜻은 현실의 완벽한 도피.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외국에선 내가 외교관이다.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자부심을 갖자. 개인의 행동이 모여 한국의 품격과 이미지를 만든다.


-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점은 화장실 향이나는 과일 두리안과 화장품 향이나는 나물 고수. 우리나라에 들여오고 싶었던 물건은 화장실에서 봤던 범건(물총). 비데보다 훨씬 좋고 청결하다.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라는데 아무튼 그 물건이 그립다.


- 여행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뭘 먹을까? 어떤 걸 살까? 어디를 갈까? 내가 가진 자원(시간과 돈)을 이용해 최적의 시간배분과 동선을 짜야한다. 때로는 선택을 통해 성취감도 느끼고 후회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 웃음과 가벼운 목례는 만국의 인사. 잘 웃고, 인사만 잘해도 여행이 한결 편해진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고,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한다. 


- 말이 안 통해서 조금 힘들었다. 내가 먹는 과일 혹은 시장에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원하는 답변을 얻기 힘들었다. 뭔지 물어보면 무작정 가격만 외친다. 로컬 음식점이나 가판대에선 더욱 힘들다. 과일주스 대신에 콩주스를 먹은 적도 있고, 그림보고 음식을 골랐다가 뱀장어 죽을 먹은 적도 있다. 가이드북에 있는 집을 잘 못 들어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물쌈을 먹기도 하고,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잔뜩 샀다가 힘들게 해치우기도 했다. 


-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인생은 짧고 세계는 넓다는 사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큰 도시보다도 시골위주로 다녀야겠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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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하여

2015.08.19 01:28

나는 평소에 인문관련 책을 즐겨 읽는다. 사실 인문학 책은 무척 난해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책들을 즐겨 읽는 이유는 단 한가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개념들은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최고의 병법서 중 하나로 꼽히는 전쟁론은 나폴레옹 시대에 지어진 책이다. 그 책에 나오는 여러 군사이론들이 현재 유용할까? 하지만 그 책은 여전히 군 내에서 많이 읽히고 있다. 책에 나오는 개념 혹은 이론보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사람에 대한 직관을 키우는 것이 궁극적인 인문학의 목표다. 순수 과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문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사람에 대한 직관은 곧 학문을 대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클라우제비츠(전쟁론의 저자)라는 사람은 전투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는데 전투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 인문학은 죽은 학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이다. 비록 책의 저자는 죽었지만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살아서 같이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지는 각종 부조리와 엽기적인 사건들, 갑(甲) 문화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나 자신, 다른 사람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생각 말이다.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을 뿐. 그렇게 맹목적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은 단순히 짐승처럼 물질만을 쫓는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한번도 머리를 써본 적이 없기에.

 

인문학이 난해하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첫째, 번역의 문제. 우리나라에 들어온 번역서들은 오역도 많고 일본판이나 영문판을 중역한 책들도 많다. 문장도 매끄럽지 않고, 용어에 대한 정의도 불명확해 책마다 용어가 모두 다르다. 내용과 형식에 대한 통일된 논의가 시급하다.

둘째,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대한민국 입시에 관한 책을 몇백년 후 미국 사람이 봤다고 가정해보자. 고등학교 3년을 겪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 공간적으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인문서적은 오래 전 다른 공간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이다. 충분한 배경설명이 있지 않다면 책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번역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앞서 인문서적에 대한 쉬운 대중서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난해한 인문학이 아닌 즐거운 인문학이 될 수 없을까? 만약 뜻하지 않게 돈을 많이 번다면 인문재단을 세워서 앞서 말했던 활동들을 지원하고 싶다. 유능한 인문학자들이 어려움 없이 맘껏 글을 쓰고 소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고, 더 큰 뜻을 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사는 대한민국이 아닌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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